묵묵히 언덕을 오르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을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그의 목에는 묵직한 카메라 하나와 사원증 하나가 걸려있었다. 그가 달라붙어 오는 반팔 티셔츠의 목 부근을 붙잡아 부채질했다. 그 움직임에 따라 플라스틱 사원증이 달랑거린다.
사회문화부 기자, 서연호.
그가 팔자도 없는 이 언덕길을 오르게 된 것은 한 달 전 아이들의 제보 때문이었다. 올해 겨우 열 살이 된 아이 다섯이 우르르 몰려와 행한 구두 제보를 진지하게 여긴 것은 그뿐이었다. 막내인 그가 얼결에 아이들을 전담하여 대응하자 취재부의 선배들은 외려 아주 잘됐다는 눈치였다. 며칠 전까지도 건물 주인과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 구닥다리 신문사는 필요 없으니 폐업하라 설교를 해댔으니, 아이들을 울려 보냈다는 구실까지 생길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그의 팀장은 아예 그날 하루 아이들과 있을 시간을 따로 빼주기까지 하였다.
‘이 동네 애들 귀해서 극성인 거 알지? 적당히 하고 돌려보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다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알아들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은 한시름 놓은 얼굴을 하고, 피곤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인 채 편집실로 모습을 감추었다.
접객실에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가 타 준 아이스티를 하나씩 물고 있는 다섯 명의 꼬마 손님이 있었다. 아이스티가 바닥을 보였는지 자리에서 벗어나 돌아다니려는 아이의 주의를 돌리며 연호는 1인 소파에 앉아 기자 수첩을 꺼내 들었다. 볼펜을 달칵이자 아이 하나는 구식이라는 눈빛을 했고, 아이 넷은 눈을 반짝였다. 그는 이어 얄팍한 막대 형태의 녹음기를 꺼내 올려두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와아! 써주는 거예요?’
‘자료가 충분하다면.’
‘괜찮아요. 저희 증거 많아요!’
‘지금 같이 가요!’
‘아저씨가 다음에 따로 가 볼게.’
‘어른한테는 안 나타난단 말이에요!’
‘응?’
‘어른한테는 안 나타난다고요!’
아이들 제보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저 언덕 너머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 인간을 닮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산다.
솔직하게 터놓고 말하자면, 그 또한 아이들의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근처 가파른 곳에서 구를 뻔한 것을 예측한 것처럼 붙잡아 구해줬다든가, 눈빛만 보고 자신들의 생각을 모두 읽어냈다든가, 다음날 자신들한테 일어날 일을 모두 맞혔다든가, 물을 조종해 아름다운 문양을 그려냈다고도. 공중을 날았다고도 했다. 물론, 아이들의 진술은 놀랍도록 일치했고 일관되었지만, 그것이 ‘인외의 존재’의 실재까지 뒷받침해 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어른만 있으면 나타나지를 않는단다. 그것이 이 어린아이들이 곳곳에 제보를 하다못해 후미진 동네 신문사를 찾아오게 된 이유였다.
서연호는 아이들을 타이르며 돌려보낸 후에야 얼음이 거의 다 녹은 아이스커피를 쪽 빨았다. 아이들은 기분이 전부 풀린 채로 보호자들에게 인도되었고, 편집실의 팀장과 선배들은 그제야 한숨 돌리며 하루의 소동으로 넘겼지만, 서연호는 아주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이들만 만나주는 언덕 너머 숲에 홀로 사는 사람, 위험하고 수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동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남자는 뺨을 타고 턱 끝까지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이 길은 매번 순풍이 부는데도 숨이 찼다. 이쯤에서 내려다보는 언덕 아래 풍경은 산뜻했다. 그러나 그는 금세 시선을 떼고 이제는 익숙해진 숲길을 조금 더 올랐다. 10여 분을 더 걷고 붉은 천이 매어진 소나무를 크게 둘러 지나, 지나갈 수 없을 것처럼 막혀있는 덤불을 한 번 헤치면.
그렇게 마주한 실체는 이러했다.
“어머, 뛰어왔니?”
“조금요.”
“물 한 잔 마시렴.”
“... 감사합니다.”
그보다 한 뼘 작은 키, 바래어 회색빛에 가깝게 느껴지는 머리카락과 진홍색 눈. 평범한 인간의 태를 한 여자는 군더더기 없이 움직이며 친절하기까지 했다. 컵을 건네는 손과 받아 드는 손이 겹친다. 맞닿는 피부는 보드랍고 미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히려 그의 체온이 뜨겁다면 뜨거웠지.
남자는 건네받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자, 더위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여자는 익숙하게 자신의 집 안으로 그를 안내했다. 현관으로 보이는 것을 지나치자마자 들이닥치는 냉한 공기에 남자는 이번에도 눈을 굴려보고 말았다. 역시나 에어컨이나 공기 순환용 전자기기는 없는 것 같았다. 여자는 그런 그를 예상했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남자는 집 한가운데 마련된 테이블에 앉았다. 모든 가구가 여자의 체형에 맞춰져 있는 탓에 테이블의 의자가 그에게는 조금 작게 느껴졌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는 수첩을 꺼내고, 볼펜을 달칵이고, 아마도 불필요할 녹음기를 꺼내 켰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이 궁금하니?”
여자가 맞은편에 앉아 손에 턱을 괴며 질문했다. 마실 것을 가져온 손은 컵에 잘 붙어 있었다. 걸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중 부양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아이들이 그녀에게서 보았다던 현상 몇 가지를 질문했다.
“민솔이를 구해주었다던데요.”
“민솔이?”
“당신을 찾아오는 다섯 명 중 가장 키가 큰 친구요.”
“아, 그랬지. 그게 어때서?”
“꼭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고 … .”
“그 나이대 애들이 다 그렇지. 그런 말을 믿니?”
“...... .”
서연호는 이제 슬슬 이 모든 걸 기대 혹은 의심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무언가 의미심장한 답은 웃으며 끝내 농담이라 무르고, 기사로 쓸 법한 사진이나 영상 자료는 단 하나도 얻지 못했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방문이었다. 수첩을 바라보면, 이제 할 만한 질문들도 바닥나고 있었다.
“저는, 왜 만나주시는 거예요?”
“무슨 의미니?”
“취재하러 온 거 아시잖아요. 인터뷰로 쓸 수 있는 대화는 없는데 늘 응해주시고.”
“너랑 하는 대화가 즐겁단다.”
“아이들이 말하기로는, 어른은 만나주지 않는다던데요.”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고 찾아온 사람은 너뿐이거든. 그러니까, 그래 …, 정중하게 찾아온 사람 말이야.”
아. 끄덕임과 함께 그가 수긍했다. 수첩을 느린 리듬으로 두드린다. 그리고 길게 내쉬는 한숨. 여자는 시선을 마주한 채로 고개를 기울였다. 남자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이제 질문이 더 없네요.”
“...... .”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것만 마시고 가볼게요.”
“알겠어.”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에 나뭇가지 흔들리는 소리, 새 지저귀는 소리, 한적한 숲의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를 메우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잔을 비운 남자는 말한 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자가 뒤따라 일어났다. 시선이 현관을 향했다. 정확히는 그 너머 어딘가를 보는 것 같았다. 그가 기원한 곳, 혹은 이질감이 드는 여자가 기원한 이곳에서는 짚어낼 수 없는 그 어딘가.
여자는 드물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우연의 자락을 더듬는 것 같기도, 운명의 확률을 셈하는 것 같기도 했다.
“너, 드레이크 방정식이 뭔지 아니?”
“...... .”
“됐단다. 가보렴.”
남자는 무어라도 더 답해보려 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방정식과 미지수, 해와 풀이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꺼내 들 다른 주제도 없었다. 그는 한참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형적인 인사말만을 남기고 밖을 나섰다.
이유가 없지 않은가. 더 이상 여자를 찾아갈 명분이 없었다.
남자는 미련 가득한 손으로 수첩을 덮었다. 여자에게는 취재라 하였지만, 신문사에서 겨우 어린아이들의 제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다. 그러니 연호는 순전히 자신의 연차를 고스란히 반납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그것도 오늘로 끝이겠지. 밖으로 걸음을 내딛자 다시 공기가 후덥지근해졌다. 여름이어서인지 아직 날이 어둡지 않은 시간이었다. 남자는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변을 조금 더 맴돌고 싶었다,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이게 무슨,”
그러니까, 주변을 조금 더 산책할 요량일 뿐이었다. 이런 걸 발견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우주선? 타임머신? 남자는 떠오르는 것들이 공상과학소설의 소재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자조하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곳곳에 쓰인 언어들이 낯설었다. 그는 녹음기를 켰다.
―동쪽으로 5분, 북서쪽으로 5분을 꺾어 아이비가 드리워져 있는 편 너머. 성인 세 명이 탈 수 있을 크기의 이동 수단으로 보이는 기계가 있다.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었다. 몇 번의 셔터음. 낯선 언어로 적힌 안내문 글자 위를 문질러 본다. 해석할 수 없는 글자들은 이 시대의 문명이 아닌 것만 같았다. 예사로운 모습을 하였으면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 꼭 여자와 닮았다. 완벽한 증거는 되지 못할지언정, 흥미를 돋울 수는 있을 정도의 자료였다. 구석구석 만족할 만한 사진을 건진 그는 이어 캠코더를 꺼내 켰다. 무단 침입이 아닌가, 라는 걱정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어디든 둘러봐도 괜찮단다. 여유롭게 말하던 여자의 얼굴이 생각나자 뻔뻔해졌다.
조작하는 곳인가, 그가 중얼거리며 버튼으로 보이는 것들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투명한 창 너머에는 택배처럼 보이는 상자 하나가 놓여있었다.
“거기 누구니?”
“... 아,”
―달칵
버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그의 앞, 투명한 창 너머 순식간에 파란빛이 가득 들어찼고, 어느새 다급히 달려온 여자가 그의 손을 붙잡아 바깥으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그를 당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밀쳐냈다. 하지만 이미 남자는 창 너머의 현장을 똑똑히 본 후였다. 어쩌면 캠코더에도 그 모습이 찍혔을지 모른다. 그곳에 놓여있던 상자는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여자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며, 아이들이 한 말은, 아이들이 한 진술은 모두 진실이었다.
안에서 여자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조작하는 소리가 났고, 불길한 기계 소음과 빛 또한 잦아들었다.
“이만 간다고 하지 않았니?”
“그게, 음 … 가는 길이었는데 …… .”
연호는 숨을 헐떡이며 답을 흐렸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여자는 이어 말하라는 듯 눈썹을 까딱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말해보렴.”
“또 보러와도 되나요?”
그녀는 냉랭해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버튼 몇 개를 조작했다. 기계의 설정을 초기화하는 중인 것 같다고 남자는 분석했다. 사라진 상자는 돌아왔을까? 어디로 간 걸까. 자신이 될 수도 있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럼에도 남자는 당장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쪽으로 밀어두었다.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쌀쌀하게 바뀐 분위기와 달리, 나긋한 음성이 이어졌다.
“그래, 질문이 더 생긴 거니?”
“... 아뇨.”
“그럼?”
“질문이 없는 날에도 오고 싶어서요.”
그의 답에 여자는 만족한 표정을 했다.
이후, 연호는 영문도 모른 채 여자에게 이끌려 움직였다. 당연히 네가 바로 돌아갔을 줄 알았단다. 자신이 지나치게 조심성이 없었다고 투덜거리며 여자는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남자에게는 다시 컵 하나가 쥐어졌다. 이번에는 미지근한 물이었다.
여자는 집 담장을 따라 한 바퀴 빙 돌아 움직였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그를 벤치로 안내한 여자는 당연한 듯이 옆에 앉았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며 하늘을 주홍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남자는 그 광경이 꽤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인간에게 새로운 능력이 있다면 무엇일 거라 생각하니?”
“어 … , 육감? … 독심?”
“...... .”
“시간 여행?”
이쯤에서 여자는 완연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뚱한 표정을 했다. 저 진지하게 대답 중인데요. 그러니? 미안. 여자는 여전히 까르르 웃었다. 진홍빛의 시선이 그의 카메라로 향했다.
“기사는 쓸 거니?”
“글쎄요.”
“나름 특종일 텐데.”
남자는 제 허벅지에 놓인 카메라의 포커스 링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이 찍었던 사진과 캠코더의 영상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어쩌면 ‘인간이 아닌 존재’의 증거가 될 법도 했다. 남자는 답 대신 여자에게 머리를 가벼이 기댔다.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가 좋아요.”
“그래. 나도 이대로가 좋네.”
추측할 것도 없이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외계의 존재, 미래에서 온 사람, 다른 능력을 가진 인류, …. 그의 머리는 몇 가지 가정들을 쏟아냈지만, 그렇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맺는 것은 지구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운명적인 일이겠는가. 하물며, 그가 그녀를 만나는 것은 우주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운명적인 일일까.
그것만으로도 서연호는 이 인연이 운명적으로 느껴졌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 취재용 말고요.”
“마음대로 하렴.”
남자는 카메라의 조리개를 열고 초점을 맞추었다. 노을빛 들어오는 배경 안에서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드레이크 방정식이라고 아세요?”
“알고 있단다, 상식이거든.”
“그럼, 운명 방정식은요?”
백연화는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눈앞의 남자가 말갛게도 웃는다.
낭만적인 설명이 이어질 타이밍이었다.
“해가 당신인 방정식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