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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의 상태는 처참했다. 녹스가 처음 볼 때도 이 정도로 최악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론은 허가받지 않은 지구인이 우주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근처에 바리케이드를 쳐두었는데 우주선에서 바리케이드를 꺼내면서 우주선을 더 망가뜨린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손재주는 얼마나 안 좋았는지 아론이 손을 댄 곳으로 추정되는 곳들이 죄다 너덜너덜했다. 차라리 조금 더 일찍 와서 살펴보면 좋았을 텐데 아론은 녹스가 눈을 뜨기도 전에 새벽에 나가서 정오 무렵 돌아왔다. 이후에는 녹스와 시간을 보내고 지구의 문화를 체험하기에 바빴고, 녹스도 아론의 허가가 없으면 우주선에 접근할 수 없어 혼자 확인하러 오기도 힘들었다.
“…이걸 고친 거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소, 손재주가 조금, 쪼오오금, 안 좋아서 이런 거지…. …고칠 수 있어!”
“제가 봤을 땐… 조금만 더 건드려도 당신은 이 구조선 안에 들어서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
제 잘못을 알긴 아는지 아론이 시선을 피했다. 휘파람까지 불며 딴청을 부린다. 아론의 고향에서는 이런 것들은 모두 기계가 알아서 수리해 주곤 하니 아론이 기술을 익힐 필요는 없었을 테다.
“됐어요, 앞으론 당신이 수리하러 올 때 저도 함께 올게요. 도와줄 테니 혼자 할 생각 말아요.”
“정말?! 그치만… …지구인인 네가 할 수 있을까…?”
“우주선은 처음 보지만… 당신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윽, 아론이 정곡을 찔린 낯을 했다. 아론은 통신 장치를 고치면서 겸사겸사 우주선을 고치려고 한 것 같은데 녹스가 봤을 땐 우주선은 포기하고 통신 장치에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쨌든 짧게라도 통신에 성공한다면 목표한 바를 이룰 테니까. 그런 생각을 전달하자 아론이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내가 없을 때도 너 혼자 찾아올 수 있도록 관계자에 너를 등록해 둘게. 손.”
녹스가 손을 내밀자, 아론이 그의 손을 포개 잡는다. 설치해 둔 바리케이드를 톡톡 건드리자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몇 번의 터치 끝에 아론이 녹스의 손바닥을 홀로그램에 갖다 댔다.
“이제 된 건가요?”
“응. 이제 길 찾을 때 헤매지 않을 거야.”
“그래요….”
대답하며 손을 거두려는데 아론이 손을 잡은 채 놔주지 않는다. 홀로그램이 제대로 설정됐는지 확인을 한 번 더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어쩐지 손을 빼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손을 고쳐 깍지를 꼈다. 손을 한참을 조물거리는데도 아론은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경각심이 없는 외계인이다.
“우주선 안을 둘러보고 싶은데, 사람이 들어가도 안전한 건가요.”
“으응, 무너지진 않을걸?”
“…정말… 괜찮은 거 맞나요?”
“안 무너질 거야.”
“못 미더운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아론이 미간을 찌푸린다. 녹스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르려다 그제야 녹스의 손을 여전히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에 열이 모인다. 분명 그냥 손을 잡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 깍지까지 껴 잡고 있었는지 모를 노릇이다. 내가 무의식으로 이렇게 고쳐 잡은 건가? 녹스의 얼굴을 보니 그도 모르겠다는 멀뚱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슬그머니 깍지를 빼서 손을 뒤로 감춘다. 빈손의 감각에 지구인은 저도 모르게 손을 괜히 쥐었다 편다.
“그, 그렇게 불안하면 직접 들어가 보던가.”
“우주선이 무너져서 제가 다치거나 죽으면 배상은 확실히 해주는 거죠, 아론.”
“그럴 일 없어!!”
빽 소리를 지르는 아론을 향해 작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가, 이내 우주선 안으로 향한다. 밖에서 볼 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던 우주선은 내부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바닥 여기저기에 물건이 쏟아져 있고 망가진 물건들이 쌓여 있다. 듣자 하니 지구 근처를 지나갈 때 우주선 본선에 이상이 생겼었다고 했다. 그 탓에 우주선의 인공지능이 본선의 구조선으로 대피할 것을 권했고, 본선에서 나온 구조선이 가장 가까운 생명의 별로 떨어졌다고. 그 탓에 구조선은 고작 두어 명이 생활할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었다. 창고로 사용하는 곳에는 비상식량이 쌓여 있고, 현재 구조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화면이 떠 있다. 그 옆이 문제의 통신 장치였는데, 지구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구조선이 크게 흔들리는 바람에 아론이 하필 통신 장치에 부딪히고 말았단다. 그 탓에 파손.
“아론, 통신 장치를 고치지 못하면 영영 집에 갈 방법이 없는 건가요?”
“응?”
녹스가 구조선 문밖으로 고개를 빼고 물었다. 작은 두 손을 내밀어 도토리를 내미는 다람쥐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론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동그란 눈을 깜빡이던 아론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는 않아.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게 가장 최선이지만, 지구에 우주 연합 사람이 올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집에서 나를 작정하고 찾으려고 하면 언젠가는 오실걸? 우리 할머니가 좀 집요하댔잖아. 우주 경찰에 신고했을 수도 있어.”
“그럼 통신 장치를 꼭 고치지 않아도 되는 거네요.”
“근데 내가 가출하면서 최소 1년은 찾지 말랬어. 우주 경찰 같은 거 부르면 나도 성인이니까 집에 절대로 안 돌아가겠다고 했지.”
“…….”
“…그렇게 안 봐도 나도 알거든? 내 업보라는 거….”
외계인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인다. 시옷으로 올라간 입 하며 내려간 눈썹 하며, 처진 어깨 하며…. 딱 봐도 우울해진 꼴에 구조선 밖으로 나온 지구인이 그 앞에 나란히 쪼그려 앉아 외계인의 흰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는 것만큼 부드러운 머릿결이었다. 사이사이서 지구인과 꼭 같은 샴푸 향이 났다.
“당신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머무르게 해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엄청나게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도?”
“상관없어요.”
아론이 두 팔을 뻗는다. 녹스가 거부하지 않고 외계인을 품에 안는다. 주고받는 온기가 따뜻했다. 각자의 별에서 동떨어진 존재들이다. 지구인은 지구에 정을 붙이지 못했고, 외계인은 외계 행성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푸른 별 행성에서 두 이방인이 마주한다.
“이게 다 네가 다정한 탓이야.”
지구인의 품에 고개를 묻은 외계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가 낮게 웃었다. 이런 원망이라면 썩 나쁘지 않다.
“당신이 떨어진 별이 지구라서 저는 기쁜걸요.”
“너, 너, 바보야?”
“그건 아닌데요….”
그가 품에 안긴 이를 고쳐 더 단단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아론은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그의 품에 완전히 기댄 채였다. 안긴 채로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다. 고향별에 대한 이야기, 주말에 놀러 갈 놀이공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처음 만난 인간이 녹스라서 기쁘다는 이야기….
“기회가 되면… 다음에 우리 별에 너도 같이 가자.”
“당신 별에요?”
“응. 좋은 걸 많이 보여줄게. 네가 있으면 내 고향도 분명 좋아질 거야….”
꼭 마법에 걸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외계에서 온 외계인은 SF 같은 미래 과학 기술을 넘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그건 분명 인간의 마음을 건드리는 마법일 테다. 이십 년 넘게 살아도 좀처럼 정이 붙지 않던 지구가, 고향별이… 고작 한 존재가 새로 나타났다고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함께하는 나날이 길어지면 분명 이 존재를 마음에 품게 될 거라는 어렴풋한 예감이 든다. 그래도, 그런 기분이 싫지는 않다.
“그래도 그 전에 같이 놀이공원에 가야죠.”
“당연하지…. 놀이기구 잔뜩 탈 거야.”
“쓰러질 때까지 타는 건 아니죠, 아론. 당신이 원하는 만큼 가 줄 테니… 여유롭게 놀기로 약속해요.”
녹스가 그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자연히 아론의 팔이 녹스의 몸을 감쌌다.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걷는 것에 아론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기보다… 힘이 세구나, 너.”
“절 얼마나 약하게 보고 있었던 건가요….”
“으응, 네가 고운 만큼?”
“제가 고운가요?”
“몰랐어? 여태 본 생명체 중에 네가 제일 예뻐.”
“그런가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요.”
“치, 다들 눈이 삐었나봐. 너 지금 내 말 안 믿는 거지?”
“아니에요, 믿어요.”
“됐어, 됐어.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발랐어요. 확인해 볼래요?”
“아, 정말!!! 얄밉게 굴래? 됐어, 집으로 가자.”
아론이 녹스의 목에 감싼 두 팔에 더 힘을 준다. 더해지는 무게에 그는 잠시 멈춰서서 이방인을 바라보다 걸음을 옮긴다. 고작 두 어절의 단어가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 집으로, 가자. 그래, 집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