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들린 헤레이스.
중얼거림에 여자가 고개를 움직였다. 그가 손을 가로저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여자는 알아챘다는 양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밤하늘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니, 대기 없는 새카만 무중력의 공간에 빛이 붙박인 것처럼 빼곡했다. 지구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달리, 빛이 산란하지 않는 우주의 풍경은 꼭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지루하다는 오랜 감상을 꺼내 들며 여자는 북동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시선 끝에는 점 하나가 빛을 밝히고 있었다.
매들린과 헤레이스였다.
20여 년 전, 천문학자 헤레이스 부부는 긴 관측 끝에 쌍성(雙星)계 하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뿐인 딸의 이름을 따 더 밝은 주성에 매들린, 어두운 반성에 헤레이스라 각각 이름 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로부터 17광년이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임이 알려졌고, 지구에서는 즉시 매들린-헤레이스 쌍성계로의 비행선이 꾸려졌다.
1961년 인류 최초 우주인의 탄생, 1969년 인류 최초 달 착륙, 발전의 가속과 정체 구간을 반복하던 지구의 우주탐사 기술은 21세기 끝 무렵부터 다시 발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2세기간 급속도로 발전한 우주탐사 기술로, 현재는 몇백 광년 거리의 탐사를 위한 우주비행선의 발사 또한 비일비재해졌다. 그러니 17광년 거리의 쌍성계는 우스웠다. 21세기의 우주정거장과 유사한 크기의 간소한 우주비행선에는 수십 명의 이들이 올라탔다. 그들 중에는 헤레이스 부부와 그들의 외동딸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우주를 유영했다. 그들이 탄 우주선의 창밖으로 밤낮 구분 없는 별빛이 점과 선의 형태로 빛났다.
매들린은 곧 나누어질 것 같은 점 하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페르시온 항성계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는데,”
과거를 회상하는 것치고는 담담한 음성.
“이제는 별빛이 보이는 걸 넘어, 두 개의 별로 보이는 것 같네요.”
유명 인사의 사소한 반전이라 할 수 있을까. 헤레이스 부부의 딸은 별과 우주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싫증을 느꼈다. 새카만 도화지, 빛나는 점과 선. 그것은 여자의 모든 기억에서 의미 없는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자는 그보다는 새로운 세계를 원했다.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원했다. 영원하지 않기에 영원을 바라게 되는, 가령 제 앞에 서 있는 이와 같은.
지금 이 우주선이 향하는 별과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는, 이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별에 관심이 없는 이였다.
“기대돼요.”
그랬던 여자가 쌍성에 지대한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불과 3개월 전이다. 그 별들이 곧 수명을 다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새하얀 도화지와 같던 눈동자에 처음으로 별빛이 가득 들어찼고, 평소라면 한 단어 꺼내기만 해도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별의 탄생과 죽음에 관해 물었다. 남자는 그때에도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눈부신 미소를 지었고, 남자는 머릿속으로 잔상과 같은 의문을 곱씹으며 눈을 감았다. 수명을 다한 별의 운명은 어떠한가.
남자의 아버지는 미생물학자였다.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하던 아버지의 연구 주제가 천체생물학으로 바뀐 것은 우주선 정비사인 그의 어머니를 만난 순간부터였다. 지지부진한 연구를 붙잡고 있던 제임스 벨은 기회가 오자 놓치지 않고 아내와 어린 남매를 데리고 매들린-헤레이스 쌍성계 탐사선에 올라탔다. 시어도어 벨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푸른 하늘이나 정겨운 흙냄새 따위가 아닌, 인공중력 정도만이 지구를 모방한 전부인 우주탐사선의 덩그런 방 하나였다.
저와 엇비슷한 키의 여자아이가 그의 옷소매를 붙잡는다. 단정한 머리, 새하얀 머리띠, 새하얀 눈동자, 이 우주탐사선의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을 얼굴. 탐사선이 쉼 없이 목표로 항해하는 별들, 그 이름들의 주인, 매들린 헤레이스였다.
‘여기서 가장 멋진 곳은 어디일까요?’
‘... 서쪽 절벽.’
그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칼이 기울어졌다. 하얀 눈동자는 순백의 도화지 마냥 그의 모습을 비추었고.
‘데려가 줄 수 있나요?’
부탁을 빙자한 요구에,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찔한 절경을 앞에 두었다. ‘서쪽 절벽’은 그가 그의 지나치게 짓궂은 누나를 피해 도망 다니던 끝에 찾은 우주탐사선의 공실이었다. 정확히는 탐사선의 잔여 부품 저장고 중 하나로 성인 한 명이 겨우 드나들 만한 공간이었으나, 십여 년의 비행으로 부품이 하나둘 교체되며 예닐곱 나이의 아이 둘은 편히 서 있을 만한 곳이 되었다. 이곳은 여타 부품 저장고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탐사선의 전력공급 엔진 내부가 훤히 보인다는 점이었다. 기울어진 투명한 창 아래로 희미한 기계 소음과 열기가 느껴진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창이 깨어져 여기서 떨어진다면 그대로 추락사였다. 그것이 시어도어가 이곳을 서쪽 절벽이라 부르는 이유였다. 우주공간에서의 추락사라니, 얼마나 어이없는 죽음인가. 하지만 불운하게도, 그는 훗날 우주탐사선의 어느 편에서 그것을 목격했고 그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강력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는다. 과거 회상에서는 차치할 이야기다.
아직 단순한 고소 공포에 대한 감각만이 그에게 존재한 순간에, 매들린은 시시각각으로 회전하고 서로에게 꿰맞춰 돌아가는 기어들을 보며 살풋 웃었다. 그녀가 창 위의 손을 고쳐 짚자 둔탁한 소리가 났다. 그가 급하게 매들린의 팔을 붙들었다.
‘조심 좀 하지?’
‘고마워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을 겨우 떨쳐내며 그는 매들린의 시선을 따랐다. 아름다워요, 속삭임이 들렸다. 빈속이 울렁거렸다. 아마도 시어도어의 경외와 공포가 눈앞의 이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동력의 근원에 매료된 눈을 보며 그는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우주탐사선 내의 아이들은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적은 수였다. 자연히, 시어도어는 그 후 아주 많은 날을 매들린 헤레이스와 함께했다. 매들린은 매끄러운 물의 표면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다가도, 흥미로운 것을 볼 때면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돌변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미소로 포장해 거침없이 다가가 막무가내로 손에 쥐었다. 곁에서 심장을 부여잡는 것은 시어도어였다. 제발, 조심 좀 해. 지긋지긋하다는 어투로 내뱉는 주의도 매번 걱정이 담긴 탓인지, 매들린은 이를 기꺼워했다. 시어도어는 상냥하네요. 중얼거린다. 상냥은 무슨.
매들린은 조향을 업으로 삼았다. 여자는 이름값만으로 먹고살 수 있었으니, 취미로 삼았다는 편이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개인 방이자 작업실에는 따로 빼둔 향 몇 가지가 있었는데, 개중 하나의 이름은 서쪽 절벽이었다.
‘똑같은 풍경이라 지겹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는 찾아가지도 않으면서.’
‘처음 본 순간을 담은 거예요.’
‘…… .’
‘당신이 처음 그곳을 소개해 주고. 손 아래로 미미한 소음과 열기를 느끼고, 당신의 맥박과 탐사선의 숨이 교차하던 그 순간이요.’
매들린 헤레이스는 별과 우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오히려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들에 지루함을 느꼈다. 여자는 새로운 것을,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원했다. 영원하지 않기에 영원을 바라게 되는, 향으로나마 겨우 붙들어둘 수 있는 한순간과 같은 것들. 그런 면모는 종종 걱정 많은 남자를 애닳게 했다.
매들린 헤레이스는 자주 사건사고에 휘말려 있었다. 정확히는 그 주변부를 맴돌았다, 관찰자가 되기 위해. 그럼 시어도어 벨은 그녀의 옆, 사건의 지평선 그 언저리에 주저앉아 한숨을 쉬고 만다. 조심 좀 해.
자, 다시 원점. 수명을 다한 별의 운명은 어떠한가.
시어도어 벨은, 별과 우주를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별과 우주로부터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타의로 우주선에 갇혀 지낸 10대, 20대의 대부분을 그 이유를 찾는데 보냈는데,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죽음과 상실을 지나치게 두려워했다. 타고난 성질이었을 것이나, 이를 촉발한 것은 운 없게도 목격하고만 추락사일 테다. 지구를 모방한 중력이 만들어낸 가속도, 그리고 죽음.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별과 우주의 시간은 한낱 인간인 그보다 느렸고, 그 아득한 시공간에 자신을 파묻으면 감각을 무딜 수 있었다.
매들린 헤레이스는 기어코 무뎌진 그의 감각을 날카로이 할퀴었다.
“시어도어, 사건의 지평선을 아나요?”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단 한 번도 우주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이 질문의 저의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없었다. 짧지 않은 고민 끝에 그는 사실을 답했다.
“탐사선이 쌍성계에 도착할 때쯤, 수명을 다한 주성에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거야. 매들린은 함께 돌던 헤레이스마저도 흡수한 블랙홀이 되겠지.”
“.......”
“블랙홀의 중력은 근처의 모든 걸 집어삼키고 말아. 우리가 가장 빠르다고 말하는, 빛조차.”
그는 침음을 흘렸다. 여자는 말을 이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달갑지 않은 얼굴로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제 상실의 정의를 읊었다. 형태도, 부피도, 본질도, 빛조차 존재를 잃는 세계.
“관측 불가능한 우주.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경계선.”
“흥미롭네요.”
매들린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이질적이리만큼 새하얀 눈동자가 그의 모습을 담았다.
기묘한 불안감이 시어도어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녀가 한 걸음 다가왔다. 그리고 두 걸음.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 그는 매들린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팔을 감싸 붙잡았다. 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려온다. 제 평온을 지루하게 여기는 여자가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여 속을 뒤집어 놓을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따뜻한 손이 그의 뺨을 감싼다. 시어도어는 그저 눈만 깜빡거리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손끝이 그의 턱선을 누르며 내려갔다.
“시어도어, 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요.”
“알고 있어.”
“사건의 지평선은,”
그의 턱을 감싸 아래로 당긴다. 기어코 코끝이 부딪혔다. 숨결이 닿았다. 시어도어는 그 숨을 영원히 잃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들린은,
“꼭 저를 위한 유토피아 같아요.”
“...... .”
“무엇도 관측할 수 없는 공간.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경계선.”
지금 함께 들이켠 숨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영원과 상실이 맞닿는 순간이었다.
매들린 헤레이스는 언제나 사건의 관찰자였다. 그는 언제나 그런 그녀의 옆에 목격자로 혹은 보호자로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여자의 한낱 영원할 배경에 불과했던 별들은 죽어가고 있었으며, 여자는 그 찬란할 순간을 욕심내고 있었다. 죽음과 삶, 상실과 영원이 교차할 그 짧은 순간. 이번에는 관찰자로 머물 수 없었다. 사건의 지평선에 던져질 시간이었다, 그 영원과 같은 찰나에.
시어도어는 눈을 감았다. 여자가 제게 꺼낼 말을 직감하며.
“그걸 보고 싶어요. 함께해 줄래요?”
… 기꺼이.
속삭임에 가까운 대답에 맑은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