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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게 식어가는 기계 외피를 향해 손을 내뻗는다. 살아있다 시위하는 모든 감정이 너로부터 발원하였으니, 너 역시 나를 생각하였을 것이므로, 누군가는 가벼이 명명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음에도.

나와 함께했던 너의 그 모든 시간을 삶이라고 부르고 싶어.

 

 

밤잠에 들기를 미루었는데도 가슴은 마구 벅차오르는 별스러운 밤이었다.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걱정이 자신을 대신하여서 잠든 것만 같았다. 퀴퀴하고 눅눅한 여름날의 끄트머리, 잠들지 않은 열여섯의 소년은 고양이 세수로 대충 눈가를 문지르며 오가는 이 한 명 없이 조용한 밤거리를 내달렸다. 연이어진 가로등 불빛 아래로 소년만 한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다가 뛰놀듯 사라지기를 여러 차례. 목적지에 다다를 즈음에서야 소년은 온전히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달음박질로 숨이 가빠왔지만 꼴에 신중히도 기척을 감추고자 노력하였다. 뛰쳐나오기 전 창밖으로 몰래 고개 내밀어 보았던 광경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그건 분명 안드로이드였다. 폐기장 관리인이 직접 검수하여 통과시킨 걸 보았으며, 수명이 다한 폐가전과 고철덩이 사이에 버려질 만한 사람 닮은 기계라고는 안드로이드뿐이니까. 소년은 앞으로 부릴 기행에 긴장이 되는지 주먹을 쥐었다.

안드로이드가 널리 보급된 시대. 방범용 드론이나 보안 카메라의 눈을 피해서 벌어지는 자잘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내다 버린 물건을 주워 와 제 것으로 삼는 이들이 더러 있었고, 안드로이드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에게 제일 값어치가 있었다.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로봇의 일부를 떼어내다 되파는 것으로 섭섭지 않은 돈벌이가 되었다. 그러나 소년이 안드로이드를 훔치고자 한 건, 빡빡한 주머니 사정을 해결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고작 돈을 번답시고 위험을 감수하기란 소년의 순박한 성미에 맞지도 않았다. 하물며 폐기 처분될 안드로이드를 되살리겠다는 건데! 꼬질꼬질한 소년은 아직 때 묻지 않았고, 그저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며, 그 나이대의 애처럼 직감을 따라 분별없이 날뛰고 싶을 때가 있을 뿐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폐기장 관리인이 웬 연락을 받더니만 자리를 비웠다. 달이 기울어가기 시작했는데도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온 감각의 날을 세웠다. 푸른 가로수 나뭇잎 사이로 유달리 이르게 시들어버린 붉은 가랑잎이 눈에 들어왔다. 때늦게 피어난 꽃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위는 동그랗고 아래는 뾰족하게 접혀서인지 인간의 심장처럼 보이기도 했다. 별다른 이파리 하나. 소년은 예감했다. 제 세상이 이 순간만을 기다린 듯한, 예기치 못한 만남의 전조를 느꼈다. 어떠한 운명적 흐름으로 이끌리고 있다고. 제 삶에서 지울 수 없을 사건의 시초가 펼쳐질 거라고. 입구에 높이 매달린 CCTV에 별안간 붉은 가랑잎이 떨어져 감시 렌즈를 전부 가리듯이.

쓸모를 다한 것들을 추모 없이 소각하기 위하여 금방이라도 불 지펴질 것 같은 폐기장. 안드로이드는 세월에 녹슬고 부수어져 형태만을 어찌저찌 유지한 수준이었다. 인간이라면 고통을 토해야 했을 파손 상태에도 아프다고 앓는 소리가 아닌 경고성 빨간 표시등만이 점멸했고, 청각을 담당하는 귀 장치가 있어야 할 곳은 유실하였는지 전선이 신경처럼 비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 불완전한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내부를 비추는 푸른빛을 등지고서 소년은 죽은 듯 늘어져 있는 안드로이드에게 인사를 했다. “너 로봇이야?” 굼뜬 시선이 소년에게 가닿았고 조각난 노란 안구에 꾀죄죄한 소년이 들어섰다. 세상이 우리의 만남을 길게 늘어뜨려 느리게 재생하였다.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 왔어. 이 장소는 위험하다며 프로그래밍이 된 대사만을 읊는 안드로이드에게 소년이 손을 내뻗었다. 사람의 손과 기계의 손이 얽혔다. 너는 나와 함께하게 될 거야!

 

 

 

 

일상 속 상당한 부분이 과학 기술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도록 내리 발전해 왔으나, 쉬이 새롭고 좋은 것으로 탈바꿈하지 못하는 생활이 잔재했다. 대체로 그런 삶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중심에서 외곽으로 향했다. 외진 사각지대, 소년의 집은 그곳에 있었다. 주방과 거실을 벽으로 구분할 여유가 없었고 침실은 누워서 몇 번 구르면 끝에 닿았다. 하지만 낙담이나 절망이 눌러앉을 틈도 없이, 자그마한 보금자리에는 미숙하여서 호기심 넘치며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 소년의 풋풋한 정신이 살아있듯 자리했다. 소년은 해박하지 않지만 안드로이드를 되살리고 싶었고 열심이었다. 귀동냥으로 주워들은 수리 정비 지식을 복기하며 메모를 써재끼기도 하였고 집에 고장 난 물건이 있다는 우습잖은 말솜씨로 수공구를 적선 받기도 했다. 저만의 침실이었을 방을 한데 치우고 잠자리를 내어주다 못해, 주머니밑천을 다 털어댈 정도로 말이다. 동력이 다하여 방전되어 가는 데도 마지막까지 인간을 위해서 안내하였던 안드로이드가 소년에게는 애처로워 보여서.

“버림받은 새끼 사슴이었대도?”

 

소년이었던, 여려니는 안드로이드를 당혹하게 할 만한 말을 고르고서는 테이블 너머에 앉은 이를 기대하며 바라보았다.

안드로이드, 미로는 자신을 골리려는 농담조를 알아차리고서는 그가 늘 원하던 대로 찬찬히 눈을 끔벅였다.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모를 때는 차라리 현재의 주인인, 여려니를 위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려니는 그렇지 않다는 기계적인 부정보다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좋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웃음소리가 명랑히 울렸다.

기적적으로 소년의 손끝에서 안드로이드가 재가동하고 더불어 살면서부터, 더는 소년만의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무색하였다. 찬장에는 차곡차곡 색색의 식기가 늘어났고, 소년이 유일하게 요리할 수 있는 레토르트 식품 대신 안드로이드가 다룰 수 있는 레시피의 식자재가 들여지기 시작했다. 점차 둘의 보금자리에는 사람 사는 소리와 내음이 일었다. 하루에 세 번씩 안드로이드가 준비한 식사 자리가 갖춰졌고, 해가 저물어가는 무렵에는 손을 맞잡거나 소년이 냅다 등에 업힌 채로 바깥을 산책하면서 시답잖은 말을 나누었다. 평화롭고도 목가적인 나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소년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볼멘소리로 쓴소리를 해대는 것도 소년이었는데, 역설적으로 상처받는 것도 소년이었다. 까닭은 속상해서였다. 안드로이드는 인간을 위해서 설계되었고 프로그래밍 된 언행만을 구사한다는, 인간과 안드로이드라는 본질적인 차이를 암시할 때마다 소년은 풀이 죽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 주라. 나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줘.’

 

떼려야 뗄 수 없는 둘만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암묵적인 약속이 생겨났다. 수리비를 운운하면서 괜히 지키겠답시고 나서지 말라는 부탁에는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소년의 걱정이 있었고, 충전하며 쉬어야 할 때에는 같이 잠들자며 이불 하나를 끌고 오는 투정에는 함께이고 싶은 소년의 애정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도록, 혼자라는 존재론적 고독에서 외롭지 않도록.

그 불문율은 지난밤까지도 이어졌다. 이불 밑으로 미로의 흰 발목이 대롱 나왔지만 제대로 덮어주기는커녕 여려니는 찰싹 들러붙기만 했다. 차가운 기계 외피가 인간 닮은 체온으로 물들어지면 심장이 뛰지 않더라도 꼭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로부터 너에게로. 여려니는 이 순간이 사무치도록 좋았다. 몸소 닿는 표면적이 넓어질수록 세계는 커져만 갔고 시간은 멎은 것만 같았다. 미로는 여려니가 가보지 못한 장소에 관하여 기록된 데이터를 담담히 읊어주었고, 여려니는 그곳에서 너와 무엇을 하면서 쉬고 싶다며 재잘거렸다. 이 방 너머의 세상 그리고 그 세상 바깥의 더 넓고 흥미로운 세상. 멈춘 듯한 시간 속에서 울창한 숲과 깎아내린 절벽을, 해를 찌를 정도로 높이 솟은 마천루와 땅보다 깊은 곳으로 모든 걸 삼킨다는 바다를 상상으로나마 갈 수 있었다. 그러다 까물까물. 눈꺼풀을 짓누르는 수마가 무거워지면, 여려니는 떠들던 입을 다물고서 충전용 선이 꽂힌 미로의 목을 몇 번이고 어루만졌다. 수상쩍은 꿍꿍이는 잠버릇이라는 핑계로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자꾸만 싱겁게 광대며 입꼬리며 볼품없이 올라갔다.

“허튼 생각을-… 하고 있구나.” 간밤의 수작을 회상하던 낯이 수상쩍었는지 미로가 가늘어진 눈으로 추궁했다. 여려니는 부끄럼 모르고서 “웅.”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표정이다. 사고 회로에 오류라도 일어났는지 버퍼링이 걸린 듯한 느릿한 눈 깜빡임. 결국에는 눈을 내리감아 눈꺼풀 뒤로 시각 센서를 차단하며 도망가는 모습. 안드로이드라면 응당 산출되는 무미건조한 의사 표현 알고리즘 결괏값을 저어하고서, 눈을 감고 침묵하기를 선택하는 너. 명령 지시어로 받아들이고 수행했을 처음과는 달리, 오늘에 다다라서 여려니는 미로가 자신이 슬퍼하는 걸 보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러하기를 바랐다. 실체적으로 감각할 수 없을지라도.

“어린 사슴의 낮잠이 길어져서 고민인 거 있지?!”

“사람 말을 하고 싶을-…때 부르렴?”

“나, 어떻게 하면 잠에서 공주를 깨우는지도 아는데. 듣고 있어? 미로야?!”

헛소리를 해대는 여려니를 뒤로하고서 절전모드로 들어간 미로의 얼굴 위로 저녁놀이 내려앉았다. 그 불그스름한 석양빛이 윤곽을 그려냈다. 공기 중의 희뿌연 먼지마저 한 톨 한 톨 읽힐 정도로 적요했다. 그 고요를 가르고서 째깍째깍 울리는 시계 초침. 적막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에게 얼마만큼 남았는지 헤아려보고는 했다. 정확한 수치로 선고받지 못하였으나 선득 다가오는 징조가 있었다. 제게 고해하기도 전에 나타났던 예후를 여려니는 모를 수가 없었다. 열화된 배터리와 느려진 말씨, 마모된 신체 부품과 어긋난 균형 감각 기능. 커지는 불안과 걱정을 물질 삼아 저 태양이 제 마음에 불을 지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들불처럼 번지는 불씨가 사위지를 않았다.

너를 잃고 싶지 않아.

염원은 단순했다. 다 써가는 기계에 품어도 이상하지 않을 두려움이었다. 애석게도 고작 그걸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았다. 기계와 사용자 사이의 보편적인 관계였다면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테고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지도 않았을 테다. 세간에서는 자신이 벌일 행동과 기저에 깔린 심리를 두고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니 뭐니 연구 사례로 삼아 떠들썩하지마는, 제 마음이 유난하다며 소란을 떨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아닌 심장이 먼저 앞지르니, 몸을 일으키고야 말았다. 숨을 죽이면서 찬찬히 양록색 머리카락 위로 여려니는 고개를 숙였다. 돌이킬 수 없을 거라 자각했지만서도 멈추지 않았다. 여려니에게 후회란 할 수 있었으나 하지 않는 것에서 오기 때문이었다. 닿을 듯 안 닿을 듯 양록색 머리카락에 입술이 찰나로 스쳤다. 여려니는 오래도록 이날을 잊지 못할 거라고 예견했다. 훗날 너를 잃은 내가 우리를 떠올릴 때마다 지금을 되돌아보겠지. 우리를 추억하는 나의 발목은 여기에 매인 채 전하지 않기로 한 말로 목이 메겠지. 제 생에 후회라는 갈피를 손수 꽂았다. 잠깐이나마 닿은 걸로 위안이 되었다. 조용히 고갯짓을 거두는 여려니의 뺨이 노을보다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감겼던 노란 눈이 뜨이면, 여려니는 먼저 입을 열어 “그냥 그러고 싶었어.” 미로의 맥을 못 추게 했다.

평소와 같은 낯으로 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은, 답을 바라지 않았기에 담백했고 동시에 그 진심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상의 대화처럼. 정작 미로에게서도 이렇다 할 반응이 나오지 않으니 여려니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머리칼에 입을 맞추다 들켰는데도 화를 내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저 무정한 안드로이드를 보면서 서글퍼했고 또 안심했다. 한껏 좋아한다며 귀에 대고 돌림노래를 부르며 난처해하는 표정을 지을 네가 보고 싶으면서도. 동력이 다하여 떠나버린 널 그리워하며 슬퍼할 나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마음 아파하는 건 인간 하나이며 슬픔은 저의 몫으로만 남을 테다. 그래도 제 애정을 끝까지 모를 안드로이드가 얄미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여려니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미로의 양 뺨을 꾹 눌러 붕어 입술로 만들었다. 들려오는 답이 없었다. 한 번 더 세차게 누르며 채근하였다.

여려니가 “왜 반응 안 해?!” 심통을 부렸다.

뒤늦게 미로가 “아야…….” 매가리 없이 소리를 냈다.

유치한 장난에 미로가 아이처럼 엄살까지 부려주고 나서야 여려니의 손길이 떨어졌다. 통각을 감지하는 기능이 꺼진 미로에게 애정 어린 목소리가 쏟아졌다.

“알았지? 스치거나 까지거나 꼬집혀도 아프다고 소리를 내야 해.” 찡얼찡얼.

“네가 다치면 내 마음이 더 다치니까!” 쨍알쨍알.

그날 밤. 미로로부터 여려니는 사흘이라는 기간을 통보받았다.

 

 

미로가 예고한 방전까지 사흘. 선고받은 기간 속 여려니는 구식 안드로이드를 개조하거나 고칠 수 있다는 개인 수리 센터를 수소문 끝에 홀로 찾아갔다. 남아있는 동력을 아끼기 위해서 미로를 데리고 나올 수는 없었다. 간판 대신 상가 호수만 적힌 호실 안, 한쪽 벽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기술 자격증과 상패가 가득했다. 불법적인 개조나 비공식적인 수리를 한다고 들었으나 실력이 없지만은 않아보였다. 여려니는 절박한 얼굴로 생산이 중단된 MIRO의 정식 부품을 구할 수 있는지 혹은 호환되는 타 부품이라도 있는지 물어봤으나,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하물며 어린 시절의 자신이 얼기설기 꿰맞추며 고치려고 했던 노력이 내부 장치의 수명을 더 소모하게 했더랬다. 여려니가 일순간 말을 잃고 망연자실한 무렵, 정비공이 익숙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저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특징을 아세요? 공식 서비스 센터에서 더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우여곡절 끝에서 저희에게라도 수리를 의뢰하는 사람들 말이에요.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들이는 것이 더 값싼데도 꾸준히 거액의 수리비를 내거나, 단종된 부품을 어떤 식으로라든 구해달라며 착수금보다 많은 웃돈을 얹어 주기도 해요. 하지만 어디서도 만들지 않는 걸 아무리 저희여도 구할 수가 있나요? 지나가는 남의 집 엄한 안드로이드를 콱 뜯어내서 부품을 훔칠 수도 없고요. 그냥 기계인 만큼 폐기하고 대체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두 간절한 표정으로 저희를 봐요. 그래요, 그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이요. 소중한 사람의 병을 낫게 하거나 살리고 싶은 것처럼요. 달리 말하자면 그들에게 그들의 안드로이드는 어딘가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은 곧…….

여려니가 웅얼거렸다. “나에게는 살아있으니까.” 들려오는 답에 정비공은 미소를 지었다.

정 놓기 힘들다면 다른 방법이 있어요. 신식 안드로이드에 손님과의 추억이 낱낱이 기록된 메모리칩을 이식하는 거예요. 물론 모델이 다르니 생김새가 달라지겠지만 기억만이라도 온전할 테니까요. 어라? 고객님, 이게 울 정도의 일인가요?

 

 

어때, 너를 잃은 나는 어떻게 되었을 것 같아? 너를 잃은 뒤의 나를 생각해 본 적 있어? 안드로이드에게 추억이란 그저 메모리칩에 기록되는 데이터일 뿐이라고 했지. 나를 대하는 너의 말과 행동은 천문학적인 수치의 학습 데이터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신경망 알고리즘 그리고 중앙 사고 장치를 통해 연산하여 출력되는, 기계적인 반응이라고.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우리에게는 수많은 약속이 있었어. 오로지 너만을 구분하기 위하여 지어 불렀던 두 음절의 이름부터가 시작이었지. 너는 외로이 사는 아이가 슬픔과 고독에 사무칠 때나 정정해 주어야 하는 현실로부터 상처받을 때마다 부리는 고집이 버거웠을 거야. 너를 살아있는 것처럼 여겼으니까. 끝내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그 아이의 고집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눈감아주고 이마를 살살 때리며 겨우 핀잔이나 주었어. 난 그게 좋았어. 네 앞에서라면 어떤 억지를 부려도 다 포용해 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얼마나 참았는지 몰라.

차라리 한 번이라도 제대로 전했다면 달라졌을까.

행복해지라니. 그건 꼭 네게 마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들리잖아. 오로지 나를 위한 너만의 진실한 감정이 존재한다고 말이야. 마지막에서야 들려주는 건 너무하지. 너는 나의 답을 들어줄 수도 없는데.

차게 식어가는 기계 외피를 향해 인간이 손을 내뻗는다.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공허. 살아있다 시위하는 모든 감정이 서로로부터 발원하였으니,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였으므로, 누군가는 가벼이 명명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음에도. 나와 함께했던 너의 그 모든 시간을 삶이라고 부른다. 이제야 실컷 외칠 수 있게 된 소년은 청년의 낯을 하고서 전해지지 않을 고백을 우짖는다.

 

차가운 기계 외피, 지저귀는 파랑새, 비로소 명명되는 삶

그리고 하나의 삶을 사랑했을 뿐인 목 놓아 우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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