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해, 앞으로 함께 지낼 메모로이드 30066032호, 로디라고 해.”
불청객이 찾아왔다. 클로델과 똑같이 생긴 로봇은 가까이서 볼수록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정교한 기계 장치였다. 로디는 놀라울 정도로 하나의 인격체처럼 행동하고, 판단하며, 인간의 감정을 모방해 연기했다. 부드러운 기계 피부를 손끝으로 만질 때면, 그 정교함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인간의 기술력이 이토록 정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보다시피 로디는 예전의 내 모습을 닮았어. 그리고 모든 것을 기억하지. 너도 최근에 뉴스에서 나오는 말, 들어봤을 거 아니야? 예전처럼 메모로이드는 불안전한 기계가 아니야. 기억을 이식하는 기술 또한 전처럼 위험하지 않아. 전신 마취도 할 필요 없는 간단한 시술에 불과하니까.”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일인 듯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클로델의 태도는, 그것이 기억의 부재 때문인지 원래의 성격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클로델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메모로이드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고, 거리낌 없이 조작하며 설명을 계속했다. 이든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기계 장치에 시선을 옮겼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고개를 돌리고, 특유의 밋밋한 낯으로 대꾸하는 로디의 모습은, 본래의 클로델과 비교해도 상당히 흡사했다.
물론, 이든도 클로델의 말처럼 메모로이드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매체에서 끊임없이 논의되던 그 기계를 떠올리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자신의 일상에 스며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지만 말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이든은 일단 그 고민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굳이 지금 고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클로델의 태도가 워낙 강경하게 나왔기에, 이든은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 이든은 이 상황이 불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이든은 클로델의 행동이 엉뚱하다고 느꼈다. 물론 로디를 돌려보내는 것이 어떨지 넌지시 물어보긴 했지만, 그 제안이 받아들여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상대가 클로델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묘한 기시감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메모로이드 30066032호, 로디는 어쩌면 클로델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진짜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이다.
하물며 로디의 외관마저 클로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둥근 눈매, 자그마한 체구, 굽실거리는 머리까지—모든 것이 동일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머리색이었다. 클로델의 새하얀 머리카락은 그녀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상징이었고, 이제는 겨우 한 줌 남은 푸른 머리칼은 시간 속에서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있었다. 반면, 로디의 머리카락은 푸른 바다처럼 깊고 찬란하게 물결쳤다.
지금으로서는 이 머리 색만이 둘의 유일한 차이였고, 어쩌면 그 사실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내가 말한다고 네가 결정을 번복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일단은 알았어. 하지만 클로델, 갑자기 왜 데리고 왔는지만 알려주면 안 돼?”
“… 그게 중요해?”
“나도 알 권리가 있지 않나…”
“됐어.”
거듭 말하지만, 하필 상대가 클로델 위페르였다. 마치 높게 쌓인 성벽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단단한 방벽. 고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클로델은 단호한 태도로 이든의 질문을 무시한 채 순식간에 홀로 자취를 감추었다. 이든은 빈자리에 혼자 남아 그 자리를 응시했다. 그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은 ‘로디’였다. 로디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채, 이든과 클로델이 사라진 자리를 계속해서 번갈아 보며, 그 자리를 끝까지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그렇게 인간형 로봇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
위태로웠던 시작과 달리 로디와의 생활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메모로이드는 광고에서 내세운 ‘완벽한 재현’과 ‘사실보다 더 사실’을 흠잡을 곳 없이 구현해냈다. 클로델을 복제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 로봇은 정말로 ‘진짜 같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이든은 서서히 로디와의 생활에 적응해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편, 로디가 온 뒤로 클로델은 점차 바빠지기 시작했다. 귀가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이든과의 대화는 줄어들었으며, 어쩐지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클로델, 오늘도 바빠?”
“응.”
“도대체 무슨 일인데 맨날 바쁜 거야?”
“… 네가 알아서 좋을 거 없어.”
이번에도 클로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요즘 들어 그랬던 것처럼 어린아이 대하듯이 “로디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만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이든은 순순히 집에 머무르지 않았다. 클로델의 무심한 태도에 이든은 한층 더 각오를 다졌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 뒤 짧은 간극, 그 끝에 이든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겨 클로델의 방으로 향했다.
“이든, 어디 가?”
하지만 곧 들려오는 클로델의 목소리에 이든은 굳은 채 뒤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로디가 있었다. 적응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가끔, 클로델과 로디 사이의 허를 찌르는 순간들이 생겼다. 지금처럼 껄끄럽게도 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제아무리 이든 그레이라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든을 로디는 익숙한 특유의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놀랬잖아, 로디.”
“미안해. 하지만 네 잘못도 있어. 거긴 네 방이 아니잖아, 이든. 이번 일은 클로델에게 말할 수밖에 없어.”
이든은 어느 순간부터 로디에 대한 미묘한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감정은 묘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이 점점 익숙해지는 것에 대한 불쾌한 혐오감이었다. 하지만 이든은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면서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이든은 서서히 적응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클로델이 할 법한 사고방식을 취하며 가차 없는 결단을 내리고 곧바로 실천할 때마다, 이든은 클로델 위페르를 고스란히 느꼈다. 마치 지금처럼, 로디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잠깐…”
“이미 연락했는데. 클로델이 멀리 가지 않았으니 곧 돌아온다고, 그때까지 널 붙잡고 있으래.”
익숙한 얼굴과 부조화한 행동이 반복되었다. 클로델의 얼굴로 클로델을 언급하는 상대가 얼마나 이질적인지. 그래서 이든은 어느 순간부터, 예전처럼 단순히 손을 놓지 않고 끝없이 클로델을 설득하고자 했다. 물론 그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는 아니었다. 누군가 이든에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말한다 해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돌이켜 보자면, 이든의 첫 감상평은 신기하다는 것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본연 중에 드는 거부감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의 이든은, 이 기묘한 동거를 부정했다.
———
“… 이든 그레이!”
“왔다. 조금 더 시간이 소요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나 봐.”
“클로델…”
드물게 조급한 태도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클로델의 모습은 평소와는 결을 달리했다. 어색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요즘 들어 많이 보였다고 해도, 지금껏 보인 적 없는 클로델의 낯선 얼굴의 등장이었다. 뇌리에 남을 강렬한 클로델의 모습을 이든은 숨을 죽인 채 분명하게 눈에 담았다. 클로델이 성큼성큼 다가와 작고 가는 손가락으로 이든의 손목을 움켜잡을 때까지, 그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너 뭐 하는 거야? 내 방에 왜 들어가려고 해. 내가 이거랑 놀고 있으라고 했잖아.”
“이거라니. 로디라고 부르라고 한 사람은 너잖아. 얘 이름이 로디라며. 아니야? 그리고 특별히 들어가려고 한 건 아니야. 확인하고 싶었어. 요즘 너랑 이렇게 얼굴 보는 거 드물기도 하고.”
“… 이름 같은 게 중요해? 그리고… 그렇다고 이렇게 할 건 없었어.”
뒤늦게 클로델은 여유를 가장하며 이든의 시선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든의 두 눈이 집요하게 클로델의 뒤를 쫓았다. 이리저리 헤매던 클로델의 시선은 끈질긴 이든을 피하지 못하고 끝내 따라 잡히고 말았다. 결국 클로델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자신의 눈빛을 이든에게 고정시켰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 기계는… 내가 봐도 완벽하게 나를 닮았어. 아니? 오히려 나보다 나를 닮지 않았어? 내가 없어도 될 정도라고.”
“…그게 무슨?”
“불만 있어?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나에게는 가망이 없어. 나… 매일 일기를 쓰고, 적은 거를 종이가 해질 때까지 붙들었어. … 기억이라는 거, 점차 나를 잃어가는 거잖아.
그래서 죽도록 노력한 거야. 읽고, 또 읽고, 끊임없이 읽고, 물릴 때까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읽었고, 그리고 한 번 더 읽었어. 그래, 정말 신물 날 정도로 읽은 글도 결국 사라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끝내 기억하지 못했잖아. 소용없는 일이었다고. 그 모든 게, 하나도 빠짐없이 다.
그래서 이 기계 안에 나를 담은 거야. 이제부터 내 본질은 이거… 아니, 로디 안에 있어.”
장황하게 말을 내뱉은 클로델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이든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네 말은… 널 대체한다고 데리고 왔다고? 이 로봇을? 그런 말 안 했잖아.”
“그런 말 하면 네가 좋다고 받아들이겠다.”
“그걸 알면서도 이래?”
“그럼 어떻게 해? 방법이 없는데.”
한참 말을 듣던 이든은 이내 침묵을 고수하던 로디에게 다가갔다. 이든은 로디의 넘실거리는 머리카락을 가다듬고 젖히며 목덜미에 있는 전원 장치를 찾아 눌렀다. 짧은 기계음과 함께 로디는 눈을 감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전원이 꺼졌다.
“이제 됐지.”
“이든 그레이, 무슨 짓이야?”
“방법이 없다고 해서 방법을 제시한 건데.”
“뭐?”
“클로델, 널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어. 너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래.”
“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뭐로 듣는 거야? 얘가 나보다 더 나 같다니까. 행동도 외관도 어느 부분도 빠짐없이 다.”
“하지만 그게 클로델 위페르는 아니잖아.”
“난 앞으로도 계속 기억을 잃어가고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 갈 거야. 하지만 저 기계는, 로디는, 영원토록 나로 남겠지. 내가 기억하는, 그리고 너의 기억 속 모습과도 똑같이 말이야. 나보다 더 나 같다는 말, 빈말 아니야. 내가 나로 남지 못한다고 해도 날 선택하겠다고? 너 바보야?”
“말했잖아. 그게 클로델 위페르는 아니라고. 그러니까 난 네가 계속 기억을 잃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어도 네 곁에 있을 거야. 이건 거짓말이 아니야. 내가 거짓말쟁이인 건 맞지만.”
“너…”
멍하니 서 있던 클로델의 손을 이든이 조용히 잡았다. 그는 한마디도 없이 그저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은 클로델에게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창밖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가 바람에 살랑이고, 클로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고민을 내려놓고, 온기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