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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편

 

 

미국 연방 법원에 기소된 ‘엘레나 사건’은 불의의 사고로 오랜 연인이었던 엘레나를 잃은 제임스가 주인공이다. 엘레나가 사망했을 당시만 해도 인공지능에 대한 법률이 아직 채 마련되지 않았던 탓에 여러 문제들이 야기되었다. 첫 번째로는 사망자의 동의 없이 불법적으로 기억을 복제하는 것에 대한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찬반론이었고, 두 번째로는 새롭게 부여된 인공지능의 신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법 제정 이었다. 인공지능 역시 인간으로 분류하느냐에 대한 대전제에 대한 정립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확한 법률로 규정된 건 전무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면, 앞서 이야기한 엘레나는 인공지능에 대한 신분 규정을 명확히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이전 인공지능은 시리나 빅스비같은 단순 휴대전화 속에 내장되어있는 자동응답 서비스와 별반 다를바 없는, 연산 작업에 의한 결과가 한계였지만 엘레나 만큼은 달랐다. 로봇 공학의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의 휴머노이드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끝에 탄생된 엘레나-원본의 의식을 복제한 안드로이드-는 어느정도 걷는 것이 가능했다.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었고, 자신의 남편을 만나자 의도적으로 우는 소리를 내며 그를 끌어안았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하여, 엘레나에게 열세 번의 망치질을 가한 후 휘발유를 부워 불태워버린 제임스에게 어떤 혐의를 부여해야할 지는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감자였다.

 

***

 “고객님이 요청하신 작업은 현재 명확한 가이드가 제정되지 않아 처리가 어렵습니다.”

 

 미성의 기계음이 카운터에서 흘러나온다. 로이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입에 문 볼펜을 잘게 씹는다.

 

 “제가 등록했는데 취소가 불가능하다고요? 최초 계약서에 그런 조항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3페이지 하단 부분 제 16조 1항 참고 부탁드립니다. ‘기억 데이터의 소유권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며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 및 악용이 불가능하다.’ 하여, 고객님의 바람대로 데이터의 삭제는 불가능합니다.”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푸른 눈의 홀로그램은 ‘처리해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어떻게든 안될까요, 라고 간절하게 애원해봤자 AI 직원은 매뉴얼을 따를 뿐이었다. 뒤에서 30분가량 대기하고있던 다른 민원인들의  불만 섞인 중얼거림을 듣고 나서야 로이는 센터를 나왔다. 시간은 오후 1시.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심각해지는 기록적인 폭염에 차 내부에 있던 얼음물은 고작 1시간 만에 전부 녹아버렸다. 미지근한 물을 입에 머금으며 로이는 센프란시스코의 포장도로를 가로질렀다. 여전하게도 마법보다 머글의 것이 편했던 그는 손에 익은 핸들의 감촉을 느끼며 오른쪽으로 차를 돌렸다.

 

 에이프릴이 원인불명의 잠에 빠진 이후로 로이는 마법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영위했다. 통근할 때마다 사용했던 순간이동 마법도, 멀리 있는 리모콘을 가져오기 귀찮다며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로 가져오던 것도, 전부 그만둔지 오래였다. 에이프릴이 아니었다면 철저하게 머글로 살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에이프릴이 부재한 지금 와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과 다름 없었다. 새삼스럽게 제 정체성을 의문하는 것도 늦은 일이긴 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이 세계로부터 유리된 감각을 지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네가 없어도 나는 살아야 하니까.”

 

 그건 죽고 싶지 않은 한 이기적인 사람의 속마음이었다. 로이는 반려된 인공 지능 삭제 처리 요구 서류를 구겨 쓰레기 통에 집어 넣었다.

 

***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의 기행-로이가 자고있을 적 홀로 밖을 돌아다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막지 않은 건 제 욕심 때문에 에이프릴을 묶어두고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잡아두어선 안될 사람을 동정과 사랑으로 포장하여 옆에 두었는데, 이정도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으면 제 윤리에 어긋나니까. 스스로를 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내린 이후로는, 가급적 에이프릴에게 큰 간섭을 하지 않도록 다짐했다. 서운한 것과는 별개로 당신을 구속하지 않는 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니까.

 

우리는 그정도 사이니까.

 

 연인이라고 모든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객관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함께하고 싶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 이해하고픈 건 자신의 욕망일 뿐. 불건전한 마음을 꾹꾹 눌러담으며 로이는 펜을 들었다. 한 자, 한 자, 에이프릴이 말했던 음성들을 적어가고, 최대한 자신의 생각은 배제한 채 있었던 사실에 근거하여 글을 적었다. 몰래 당신에 대해 기록 했던 것이 쌓이고 보니 노트 수십권이 쌓였다.

 

 그러므로, 이 서류다발들은 처음부터 에이프릴의 인공지능 데이터를 만들기 위한 기록은 아니었다. 단순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 만으로 적어두었던 문서에 불과했건만. 서랍 속에 꾹꾹 숨겨둔 문서를 다시 꺼낸건 불과 1년 전이었다.

 

 평범한 날이었다. 6월의 햇살은 여름의 초입을 맞이해 따갑지 않을 정도로 들판 위에 내려앉고 산들 바람이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항상 자신보다 일찍 일어나있던 연인이 오늘따라 늦잠을 자 이상해하던 날. 분명 제 옆에서 자고 있어야하는 연인, 에이프릴이 눈을 뜨지 않았다. 잠귀가 밝아 평소에도 잠을 설친 사람인데. 로이는 황급히 911을 불러보았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결론 내렸다.

 

 추측하건데, 마법 세계에서 어떤 저주라도 맞았거나 혹은 본인이 스스로 영원한 잠에 빠졌거나 둘 중 하나일테지만…, 이런 의학 관련 쪽으로는 무지한 로이 랭커스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 아무것도.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가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의 생애가 새겨진 기록에 시선을 둔 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는 아니었을 테다.

 

***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어 두었지만, 20여년의 삶을 고작 종이 몇 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수기로 작성된 그 노트는 인공지능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내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자신이 적어둔 건 함께 나사에 입사한 이후에 밝혀진 짧은 일지 뿐이었기에. 외에는 아주 짤막한 영상 자료와 기억에 의존한 채 작성했던 에이프릴의 유년 시절 뿐이었다.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아 과거 행적 입력 창에서 약 다섯 시간 가량을 씨름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이후 후견인을 만남. 열등감(?)-추측이다.-에 사로잡힌 그녀 아래에서 그녀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는 억압 속에서 성장. 이후에는…] 호그와트에 다녔다거나, 머글 태생이나 순혈과 관련된 이야기는 차마 적을 수 없었다. 단어의 공백은 명확한 해석을 피해가며 ‘차별을 받았다' 정도로만 기술했다.

 

 검지 손가락으로 엔터키를 누르고 난 후에야, 화면에는 [에이프릴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중입니다.]라는 안내문구가 떴다. 그 문구 아래에 ‘해당 작업에는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문구 역시 띄워졌으나, 빠르게 화면은 넘겼기에 그건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작성을 완료한 로이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기지개를 폈다. 컴퓨터 화면에는 에이프릴이 살아있을 적 찍어두었던 자신과의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로이는 화면을 응시했다. 보통 사람들보다 하얀 손이 모니터 속 에이프릴을 쓰다듬는다. “내가, 너처럼 천재가 아니라서 미안해.” 고작 몇 달의 시간동안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에이프릴의 목소리가 흐릿해져가는게 두려웠다. 홧김에 신청한 에이프릴의 인공지능 개설 신청 사유란에 로이는 ‘잊는 것이 두려워서.’ 라는 문장을 기술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안드로이드에 이식하기 전 시범삼아 받아본 예비 인공지능 데이터와 대화할 기회가 생겼을 때,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는 그제서야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안녕.”

 마치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것처럼, 그다지 좋지 못한 음색으로 그리운 연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프릴.”

 “그래, 로이.”

 “나 …, 알아 보겠어?”

 “당연한 소리를 하네. 목소리만 들어도 너인 것 정도는 알아.”

 “... 그래.”

 

 손을 꼼지락 거리며 로이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어렸을 적 일은 기억이 나냐, 우리 첫 만남은 어땠는지 알 것 같냐. 내가 비행기를 만든다고 이야기했을 때, 달까지 가겠다고 했던 말은 알고 있냐 … 등등. 처음에야 그리운 연인을 향한 물음들 뿐이었지만, 점차 후반부에 갈 수록 제가 아는 ‘원본'과 얼마나 비슷한지 확인하는 검증의 시간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걸.”

 “학교에서 만났지. 네가 비행기 만든다고 했었고.”

 “그건 알아.”

 

 제대로 입력되지 않은 정보는 ‘모른다'로 외에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미사구여와 조사만 약간씩 바뀐 듯한 문장들. 로이 랭커스터는 언젠가 보았던 뉴스 기사가 떠올렸다.

 

 인공지능을 삭제하는 건 살인인가? 한 때, 뉴욕 타임스의 1면을 차지한 헤드라인 아래에는 정확하게 ‘Elena incidents’ 라고 적혀져있다. 제임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안드로이드로 돌아온 자신의 아내 엘레나를 잔인하게 분해한 사건으로, 해당 공판은 현재까지도 제임스에게 살인죄를 부여해야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찬반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기실, 로이 랭커스터는 그 사건을 보고 제임스의 죄목을 따지지 않았다. 그저 어째서, 제임스는 엘레나를 부술 수 밖에 없었느냐는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러나 막상 당사자가 되고 나니…, 제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인형의 한계는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입력한 정보 외에는 ‘모른다'로 일관하는 인공지능이라니.

 

 

 ***

 

 로이 랭커스터가 센터를 찾은 연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고작 목소리 하나 다시 듣고 싶어서 인공지능 센터의 기술력을 믿어보았건만. 결국 제임스도 자신의 사랑과 인공지능의 괴리감에 절망했을 것이 분명했다.

 

 “역시, 제임스는 무죄 판정을 받아야 해.”

 

 황무지에 로이의 차가 멈춰선다. “사람이 아닌 것을 부쉈는데 어떻게 그게 살인죄야.” 1년이 지난 지금와서야 신문으로만 본 제임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너를 살려야한다는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네가 보고싶어서, 내 욕심 때문에 이렇게 됐어.”

“우리는 영원을 약속했잖아….”

“외로움 때문에 이러는 거 맞아. 그런데, 너를 사랑해버려서 버틸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온 것 같아.”

 

 땅거미가 질 오후 6시 즘. 로이 랭커스터는 차창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작열하던 태양빛이 스멀스멀 저물어 이제는, 덥다기엔 애매한 날씨가 되었다. 로이는 남아있던 물을 한 번에 목 아래로 밀어넣고 남은 페트병을 차 안에 던졌다.

 

 “혼자 여행도 재미없네….”

 

 그리고, 핸드폰을 조작해 찍어두었던 사진 몇 장을 꺼냈다. 초반 사진은 제가 사진 찍는 걸 어색해한 탓에 해학적으로 보였다. 물론, 몇 년 지나고 나서야 제법 ‘인터넷에 올릴 수 있을 법한 사진' 수준까지는 되었지만, 여전하게도 에이프릴 보다 표정이 떨떠름한 건 사실이었다.

 

“괜한 짓 한 것 같으니까, 일어나면 뭐라 해줘….”

 

 로이는 들고 있던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한참 사색에 잠긴 이후 이런 짓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로이는 차를 돌렸다.

 

 그리고, 에이프릴의 눈색이 새벽 하늘을 닮은 페리윙클 색이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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