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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Love Space Drive-thru

 

 

아주 먼 옛날에는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 하나에 모여 살았더란다. 푸른 바다가 아름다웠던 그 행성은 점차 쓰레기로 뒤덮이게 되었고, 기온이 끝도 없이 치고 올라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인류는 살 곳을 찾기 위해 우주 탐사를 시작했고, 각자 삶의 터전을 찾아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 세월이 흘러 과학이 더욱 발전하자 몇 광년 너머의 거리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워프 장치가 개발되었다. 성운과 성운을 넘나드는 삶이 당연해진 현재, 우주 연합이 관리하는 우주 정거장과 워프 센터가 우주 곳곳을 연결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광활한 우주의 수많은 행성 속에서 저마다의 삶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이곳은 제14 항성계의 가장 첫 번째 행성 VT-001. 물류와 교통의 중심지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덕분인지 각종 직업이 넘쳐나고 생활시설 또한 매우 발달했다.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곳은 우주 연합 지부의 최첨단 건물이 자리 잡은 화려한 행성 중심부이지만, 우리가 주목할 곳은 여기가 아니다. 이 행성의 중심부에서 조금 벗어난 곳, 최신 기술로 가득 찬 거리의 끝자락에 샛길이 하나 있다. 좁고 후미진 골목을 빠져나가면, 낡고 오래된 카페가 하나 보인다. 디지털 간판도, 하다못해 LED 간판도 아닌, 페인트가 다 벗겨진 나무 간판과 다 녹슨 경첩이 달린 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구형 로봇이 팔을 삐걱대며 인사를 건네고, 그 옆의 셀프 코너에는 색이 영 구린 종이 포장지로 싸인 각설탕과 싸구려 크림, 컵 안에 가득 꽂혀 있는 일회용 빨간 빨대가 보인다. 이곳은 바로 낭만을 지키는―말이 낭만이지 사실은 시대에 뒤처진― 커피 전문점 Happy Coffee이다.

 

윌로우 우주 운수의 이사 헬로이즈 플로리아 윌로우는 지금 그 낭만 아닌 낭만을 경험하고 있었다. 14 항성계 물류센터의 확인을 마치고, 출장지에서 휴가를 즐길 겸 행성을 둘러보던 중 정말 우연히 이 카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헬로이즈는 천천히 카페 안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니! 출장이 워낙 잦았기에 다양한 행성에서 정말 온갖 카페에 가 보았지만, 이 정도로 구시대를 재현해 낸 카페는 없었다.―재현인지, 발전하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면으로만 보아왔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 신기해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로봇이 끊임없이 인사를 건네온다. 고저가 없는 기계음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대체 얼마나 오래된 거야? 헬로이즈는 슬쩍 로봇의 등판을 살펴보았다. 구형 로봇은 보통 그곳에 모델 정보를 적어놓았기 때문이다. 아, 역시. 모델 정보를 발견하고는 반쯤은 지워진 제조 일자를 읽기 위해 로봇에 조금 더 다가섰다. 이천오백……? 맙소사, 백년을 훌쩍 넘긴 구형 로봇이다. 가까이서 보니 정비마저 잘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관절마다 녹이 슬어있고 등판의 나사가 두 개 정도 빠져있었다.

 

오, 저도 모르게 작은 감탄사를 내뱉자 다시 안녕하세요, 인사가 들려왔다. 로봇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헬로이즈는 그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구형 로봇의 낡아빠진 스피커에서 울려대던 소리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밝은 목소리였다. 그럼 그렇지, 역시 다른 로봇이 있구나. 헬로이즈는 소리가 들려왔던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단정한 옷에 앞치마를 걸친 안드로이드 한 대가 서있었다. 아니, 안드로이드가 맞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저와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우시네요.”

 

 

안드로이드인지, 사람인지. 저만의 판별에 정신이 팔려있던 헬로이즈는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 허억.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안드로이드라기엔 너무 아름다우신 것 같아서……. 말꼬리를 흐리며 볼을 긁적였다. 대답으로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노래처럼. 헬로이즈는 그제야 그가 사람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아, 역시 안드로이드가 아니셨구나.”

 

“네, 인간이 맞답니다. 요즘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래도 이 카페에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주문 도와드릴까요?”

 

 

맞아요, 잘 어울려요. 네에, 그럼 이걸로. 헬로이즈는 밀려오는 민망함을 숨기기 위해 열심히 대꾸하며 코팅된 종이 메뉴판의 가장 위에 있는 커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카페 대표 메뉴 칸에 위치한 커피였다. 헬로이즈는 계산을 위해 손목을 내밀다가, 잠시 멈칫했다. 모든 게 구식인 카페인데, 생체 칩을 인식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모습에 종업원은 또 한 번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아요, 계산만큼은 최신식이라서요. 아, 그렇구나. 헬로이즈는 중얼거리며 손목을 마저 내밀었다. 원래 장사가 다 그렇잖아요, 어떻게든 돈은 벌어야 하니까요. 그는 농담과 함께 단말기를 들어올렸다. 물론, 그런 사소한 농담만으로 헬로이즈의 민망함을 전부 달랠 수는 없었다. 칩이 심어진 부분이 따끔거리는 것이 얼굴부터 손끝까지 전부 벌겋게 달아오른 게 분명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가져다 드릴게요. 헬로이즈는 바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계산대 근처에 앉아 커피를 만드는 종업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행복을 전하는 커피 전문점 ‘해피 커피’입니다. 여전히 인사를 하는 로봇으로 시선을 옮겼다. 손에 쟁반을 끼울 수 있는 것 같던데, 커피는 저 낡아빠진 로봇이 서빙해주겠지. 빠져있는 나사가 떠올라 무사히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됐다. 헬로이즈의 쓸데없는 걱정을 막으려는 듯, 커피를 완성한 종업원이 뒤를 돌아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직접 쟁반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저 로봇이 가져다주는 거 아니었어요? 헬로이즈는 믿을 수 없는 모습에 눈을 껌벅였다. 종업원은 헬로이즈의 시선을 따라 로봇을 바라보았다가, 아, 저 로봇이요? 되물으며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주었다.

 

 

“서빙도 전부 제가 한답니다. 로봇은 그냥 인사 담당이거든요.”

 

 

인사 담당 로봇이라니, 뭐 이런 황당한 소리가 다 있지. 앞에 커피가 놓인 것도 잊어버린 채, 헬로이즈는 종업원과 로봇을 번갈아 보았다. 종업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손님들의 이런 반응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인사 담당이 된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보셨다시피 연식이 오래된 로봇이라서요. 커피를 다 엎어버리더라고요. 정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새 로봇을 살 돈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이 모든 걸 해결하게 됐답니다.”

 

 

“그런데도 유지가 돼요?”

 

“그럼요, 오히려 낭만 있다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있거든요.”

 

 

그렇구나……. 의문이 풀리고 나서야 향긋하고 기분 좋은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커피 원두만큼은 낡아빠지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얼른 드셔보세요, 그래도 커피는 정말 괜찮거든요. 이름도 무려 ‘행복 커피’잖아요. 메뉴판도 제대로 읽지 않고 골랐던 헬로이즈는, 그런 이름이었구나. 이름도 영……. 실없는 생각을 하며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냄새만큼 맛도 기분 좋았고, 목 넘김도 부드러웠다.

 

 

“……정말 괜찮네요.”

 

“그렇죠?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세요.”

 

 

이번에는 작은 웃음에 그치지 않았다. 종업원은 커피잔을 쥔 채로 굳어버린 헬로이즈와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헬로이즈는 홀린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 결심했다. 이 카페의 단골이 되겠다고.

 

 

-

 

 

이곳은 행성 HR-204. 제119 항성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이 행성은 일련번호 외에도 ‘호노스’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존경, 명예, 영광, 그리고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지구 시절에 존재한 명예의 신의 이름이라나 뭐라나. 대형 우주 기업들이 즐비한 이 행성은 기업의 기술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관리 또한 잘 되어있다. 행성에 정착한 이들이 정직한 명예를 가졌는지, 불법적인 일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창출해 냈는지, 이미 호노스란 이름이 붙은 이상 이를 생각해봤자 별 의미가 없을 테지만. 어쨌든 헬로이즈 플로리아 윌로우는 거기서 태어났고 아직도 거기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꽤나 부자란 뜻이다.

 

헬로이즈가 사는 제119 항성계와 해피 커피가 있는 제14 항성계에는 그 숫자의 차이만큼 몇십 광년의 거리가 있었고, 워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값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헬로이즈는 제가 결심한 바를 지키기 위해 자주 해피 커피를 찾았다. 몇 번 더 방문한 끝에 헬로이즈가 알아낸 게 있었다. 종업원의 이름은 로일즈 루멘으로, 아직 우주 대학생이라는 것.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는데, 최근 대부분의 가게는 직원이 전부 안드로이드로 대체 되어 아직도 사람을 고용하는 해피 커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헬로이즈는 자신이 대형 기업의 이사라는 사실을 숨기고, 저를 우주 운수 회사에 소속된 배달 기사라고 소개했다. 엉겁결에 나온 말이었다. 아마 그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한 말이었겠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어서, 그냥 귀찮아질까 봐 그래. 대충 얼버무리기로 했다.

 

헬로이즈는 오늘, 사업 회의차 새로운 카페를 찾았다. 그것도 최첨단 카페로. 로봇들이 커피를 만들고 서빙을 하며, 음료 이름도 아주 화려했다. 원두도 우주 부산물에서 추출한 최고급 원두를 사용했다. 먼 옛날 지구에는 루왁 커피라는 고급 커피가 있었다던데, 고양이 똥에서 추출하는 구시대의 커피와는 비교도 안 된다며 엄청난 광고를 해댔다. 사람들은 희귀하다는 말에 사족을 못 쓴다니까. 헬로이즈는 혀를 쯧쯧 차며 커피를 들이켰다. 영 만족스럽지 못한 맛이다. 우주 부산물이고, 고양이 똥이고, 헬로이즈 머릿속에는 온통 그 이상한 구시대 카페 뿐이었으니 당연했다.

 

헬로이즈는 머릿속을 지배한 이 카페에 대해 상담할 청할 수조차 없었다. 처음 해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냉담한 반응이 떠올라 자꾸만 괴로워졌다. 뭐? 아직도 그런 카페가 있다고? 말도 안 돼. 그런 데를 왜가? 왜냐니, 신기하잖아. 신기해서, 그게 전부다. 헬로이즈는 그렇게 되뇌며 값비싼 워프 통행료를 아무렇지 않게 결제하고, 해피 커피로 향했다. 그래, 그게 전부일 거야.

 

로일즈는 오늘도 밝은 미소로 헬로이즈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물론 고철 덩어리 깡통 로봇도. 이제는 고저 없는 기계음마저 즐겁게 느껴졌다.

 

 

“어서 오세요. 헬로이즈 씨는 가까운 행성에 사시나 봐요. 요즘 들어 자주 오시길래요”

 

“그건 아니고요, 우주선이 좋아서 빨리 올 수 있거든요…….”

 

 

아차, 헬로이즈는 말꼬리를 흐렸다. 평범한 배달 기사가 좋은 우주선을 끌고 다니는 건 웃기지 않나.

 

 

“사, 사실 그렇게 좋은 건 아니고요. 요즘 같은 시대에 배달 경쟁력은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무리해서 빠른 우주선을 샀어요.”

 

 

황급히 변명거리를 찾아 덧붙였다. 말을 조금 더듬긴 했지만, 완벽한 변명이었다. 아, 그렇죠. 로일즈는 눈치채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오늘은 어떤 커피로 하실래요?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헬로이즈는 헤실헤실 웃으며 이번에도 행복 커피를 주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일즈가 커피를 들고 다가왔다. 칙칙하고 감정 없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주는 커피라니! 얼마나 좋아. 헬로이즈는 그동안 해피 커피를 찾는 이유를 한 가지 더 발견해 냈다.

 

 

“헬로이즈 씨는 어떤 커피 좋아하세요? 저는 역시 행복 커피를 제일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커, 커피요? 어, 그러니까, 음……. 자꾸만 실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막기 위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고민에 빠진 척을 해보았다. 좋아한다는 말을 왜 이렇게 낯간지러운지 몰라. 저도 역시 행복 커피를 제일 좋아해요.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커피잖아요, 마시면 정말 행복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일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을 보며, 헬로이즈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낯간지러웠던 이유는, 유독 이 카페가 생각났던 이유는, 전부 로일즈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니까, 저는 이 행복 커피보다 당신이 더 좋아요. 깨달음을 얻자마자 그런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참아냈다. 감정과 함께 목이 타오르는 것만 같아서, 커피를 들이부었다. 앗, 뜨거워……. 바보처럼 뜨거운 커피라는 것도 잊고 말이다. 괜찮으세요? 로일즈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헬로이즈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젠장, 깜짝 놀란 모습이 이렇게 귀여울 줄이야……. 그 생각과 동시에, 헬로이즈는 저도 모르게 얼빠진 말을 내뱉고 말았다.

 

 

“다음 휴일에 저랑 데이트하실래요?”

 

 

로일즈가 커다랗게 떴던 눈을 천천히 깜빡인다. 정말 천천히 깜빡이는 것일 수도 있고, 긴장한 탓에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긴긴 시간 동안 헬로이즈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들어찼다. 바보 같아,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눈 깜빡이는 것도 귀엽다. 그래, 다시 생각해 보면 정말 이상하긴 했지. 암만 돈이 썩어난다지만, 그 값비싼 워프 통행료를 턱턱 결제했다니. 난 정말 바보였구나. 한 번 인정하고 나니 그다음은 쉬웠다. 로일즈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이 보인다.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 거절이겠지. 헬로이즈는 마음을 굳게 먹고 사과의 말을 미리 준비했다.

 

 

“좋아요.”

 

“그래요, 역시 싫으시겠죠. 당황하셨을 것 같…… 네?”

 

“좋다고요.”

 

 

그리고 또 무슨 말을 했더라. 데이트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그 뒤의 대화가 꿈처럼 느껴졌다. 내일이 휴일이에요, 해피 커피 앞에서 만날까요? 좋아요, 근처 항성계에 행성 하나를 통째로 상영관으로 사용하는 영화관이 있거든요. 거기 가볼래요? 제 우주선 타고 가면 금방이니까…… 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헬로이즈는 해피 커피에 어울리게 구시대의 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꽃다발을 준비하고 직접 풍선을 불어 우주선 뒷좌석을 가득 채웠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근처 성단으로 드라이브를 가며 보여줘야지. 분위기가 좋으면 고백까지 할 수 있을 거야! 급하게 세운 것치고는 완벽한 계획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분명 그랬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화를 보고 우주선에 탈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최악이다. 긴장한 헬로이즈는 뒷자석의 풍선을 보여주기 위해 가림막을 해제하는 버튼을 눌렀다. 아니, 누르려고 했다. 헬로이즈가 누른 것은 최신식 우주선에 탑재된 명함 보관 선반이었다. 일을 하려면 명함이 중요하다며 추가했던 옵션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좋은 결정은 아니었던 거 같다. 거기에다 왜 하필 자신의 명함을 제일 첫 번째로 넣어놨던 걸까? 명함을 가리기 위해 허공에 손을 뻗어봤지만, 헬로이즈의 손을 뚫고 빛이 번쩍인다. 윌로우 우주 운수의 이사, 헬로이즈 플로리아 윌로우. 끔찍할 정도로 선명한 글자다.

 

어, 아니. 이게 아닌데. 헬로이즈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해요, 속이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이제 나를 싫어하겠지, 앞으로 어쩌면 좋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전 그냥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서……. 하, 하하하. 아하하하. 이건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웃음소리다. 마치 노래처럼 들리던 그 소리. 헬로이즈는 슬쩍 실눈을 떠보았다. 한참 동안이나 웃음을 터트리던 로일즈는 눈을 마주치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됐어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헬로이즈의 심장은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저건 사실 냉소의 웃음이었나? 애초에 내가 별로라서 중요하지 않은 걸까?

 

 

“제가 관심 있는 건 당신의 직업이 아니라, 당신이란 사람인 걸요. 그나저나, 이제야 당신이 했던 말들이 좀 이해가 가네요.”

 

“어… 정말 괜찮아요? 그, 그런데 관심이 있다고요? 정말이에요? 저도 관심 있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아, 이게 아닌데.”

 

“네, 있어요. 저도 아주 많이요.”

 

“거짓말…….”

 

“반, 반응이 그게 뭔가요? 혹시 싫은 건 아니죠?”

 

 

로일즈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괜히 쏘아붙였다. 역시 귀엽다니까. 안심하고 나니 이젠 머릿속에 그런 반응뿐이다. 너무 좋아서 그렇죠, 한 번만 더 얘기해주시면 안 돼요? 언제 울먹였냐는 듯 능글맞은 질문을 던졌다. 로일즈는 됐어요, 이제 돌아가요. 말을 돌리려 했다. 좋아해요. 헬로이즈는 로일즈가 도망칠 수 없도록, 혹시나 하며 준비했던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정말 좋아해요.

 

여기는 여전히 행성 VT-001. 수많은 사람들과 물자가 모이는 곳이며, 아주아주 광활한 이 우주의 행성 중 하나이다. 로일즈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헬로이즈는 이번에는 제대로 가림막을 해제하는 버튼을 눌렀다. 알록달록한 풍선과 꽃잎이 흩날리고, 별 너머를 물들인다. 이 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의 방식이지만 아무튼,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그래, 이 광활함 속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건,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일이지. 헬로이즈는 앞으로의 데이트를 위해 워프 연간권을 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제야 속 시원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사랑에 빠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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