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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본 적이 한 번 있어.
날이 개 푸른 하늘이 보일 때보다도 더 짙은 파랑을 품은 모습이 아름다웠지.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두렵기도 하면서 바라보는 것만큼은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좋았어. 삭막해진 자연 속에서 바다는 아직 색을 잃지 않았다는 안정감도 있었고. 내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 액체와 닮은 색이라 그런 기분이었을지도 몰라. 지금 보고 있는 바다는 그때만큼 강렬하지 않지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네. 이젠 바다보다 푸른 걸 알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야. 너를 처음 봤을 때 네 눈을 보고 바다를 떠올렸거든.
작은 아이였지. 설렘과 두려움, 이유 모를 주저함이 섞여 파도가 치고 있었어.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연장을 들고 바라보는 소년 하나. 누가 봐도 나를 고쳐낸 건 너였어. 새로운 사용자가 이렇게 작은 아이라니. 사실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사용자 설정을 어른이 할 뿐 내가 돌보는 건 아이가 주된 목적이었으니까. 다행스럽게도 복잡한 절차가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문제가 있는 기체였잖아? 생략된 덕분에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날 수리해 줘서 고마워. 뜬금없는 감사 인사지지만,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서.
제스터, 너는 휘몰아치는 바다 같았어. 쉬지 않고 파도를 몰고 들어오는 바다. 사고도 많이 쳤지만 감정의 파란을 일구는 주체가 너였거든. 외로움을 가진 인간에게 스며들어야 할 건 마땅히 나였는데도 나 또한 외로운 기체였나 봐. 메모리의 제한이 풀린 이후로는 맞다는 걸 깨달았지만. 네가 더 많이 웃기를 바랐어. 처음 보았을 때 눈에 서린 구름이 걷히고 아무 걱정 없다는 듯 밝게 웃는 모습만 보고 싶었지.
그러면서 욕심이 들었어. 네가 잠결에 내뱉은 소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 말이야. 인간이 들으면 비웃을만한 일이었지만 너와 내가 원하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안일한 생각도 했었지. 제스터. 이제와서 고백하자면 네 가족과 너의 관계를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게 내가 만들어진 목적에 부합되는 일이야. 기계가 인간의 가족이 되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말이지. 너는 분명 이 말을 들으면 헛소리라며 치부하다 화를 내버릴지도 모르지만.
지금도 너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나눴던 대화가, 표정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 인간과 다르게 기계라서 그렇다는 농담은 넣어둬. 이런 면에서는 기계인 점이 좋다는 답을 돌려줄게. 새빨간 토마토가 되어서 형이라고 부르던 기억도 아주 귀엽거든. 이걸 제니랑 넬리가 듣는다면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텐데. 그건 못 볼 거 같아서 아쉽네.
네게 형 말고도 가족이 생겨서 다행이야. 제니는 정말 너와 닮았거든. 반짝임을 가진 두 사람이 내 생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감사할 정도로.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노년의 기쁨이 되었다는 것도 말이야. 젊은 얼굴로 이런 말 하지 말까? 그렇지만 사실인걸. 네게는 미안한 이야기고 이기적인 이야기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와 제니의 마지막을 지키고 넬리의 마지막을 보고서도 내가 살아있을까 봐 두려웠거든. 지난 경험이 떠오르는 것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둘 떠나가고 나 홀로 남는 감각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너희가 나를 위해 해준 모든 일에 고마워. 그 시대에 만들어진 기계 중에 살아있는 건 나밖에 없을 거야. 많은 걸 보고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어. 사랑해, 내 동생. 나의 가족. 남은 생 항상 행복하기를.
모래사장 위에 앉은 이의 이름을 부르며 중년의 남성이 다가간다. 가까이 다가가 잠시 말이 없던 남자는 그 곁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다정한 목소리가 말을 건네온다. 웅크리듯 앉은 남자는 그의 어깨에 기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여성이 다가온다. 떨리는 등을 가만히 쓸어주며 두 사람을 끌어안는다. 한참을, 따스한 목소리가 파도에 뒤섞여 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