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미나 언더우드
떠나려고 해.
네가 미워서 떠나는 게 아니야. 싫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 떠난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7구역의 마을을 돌아갈 곳이라 여겼던 적도 있었지. 7구역을 떠난 뒤론 네 곁에 오래 머물렀고. 어느 한 곳에 발붙일 용기만 있었어도 지금보단 훨씬 좋았을 거야. 그런데 무서운 게 많아서 자꾸만 도망치게 돼.
미간을 막 찡그리고 대체 뭐가 그리 무섭냐 묻는 네 얼굴이 눈에 선해. 네가 화를 낼 때마다 ‘원본’, 그러니까 ‘진짜 시몬 첼스턴’과의 차이를 찾아내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연구소의 기술력은 정말 대단하더라. 눈썹 각도까지 같은 거 있지. 하마터면 착각할 뻔했어. 넌 한 번도 죽은 적 없고,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대체된 적도 없다고. 네 살을 갈라 열어보면 인간의 것을 본따 만든 인공 장기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심장이 박동하고 있을 거라고 말이야.
언젠간 착각하고 싶었어. 잊는 건 쉽잖아. 가장 처음의 시몬 첼스턴을 잃고서도 한참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진짜니 가짜니 따진들 뭐가 달라지냐고. 너도 그렇게 이야기했고 나도 내심 그렇게 생각했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다른 점을 찾았지만 그러면서도 난 지쳐가고 있었지. 넌 내가 알던 ‘시몬 첼스턴’의 백업 기억을 모조리 입력한 인공 개체였고, 단지 새로운 몸을 선물받았을 뿐 그것만으로는 널 부정할 방법이 없었어. 백업 기억을 활용한 기억 이전은 신인류에게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적법한 시민권이 없거나 장치와의 싱크로율이 낮은 7구역과 8구역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모두가 몸을 쉽게 갈아 끼웠어. 인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장례라는 개념은 사라졌지. 넌 평범성의 범주에 소속된 사람이었고. 그 모든 핑계를 제외하고서도, 변하지 않은 너를 눈앞에 두고 너는 네가 아니라고 부정해야 한다니. 그런 촌극이 어디 있겠어.
그래도 네 죽음을 잊을 수는 없었어. 그걸 목격한 이상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었어.
수십 번을 상상했어. 네가 죽는 장면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이유로 죽는 너를. 어느 날엔 칼에 찔렸고, 어느 날엔 총에 맞았고, 어느 날엔 난데없이 차에 치이거나 추락했지. 꿈을 꾸기도 했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본부로 찾아가 지하 벙커의 문을 열었는데, 기계와 전선에 연결된 네 몸 수십 개가 커다란 통에 담겨 나열되어있는 꿈이었어. 넌 몇 번을 죽었을까. 몇 번을 교체되고 몇 번을 살아났을까. 정말 오랫동안 네 죽음을 두려워했는데, 몇 번을 잃고서도 난 왜 몰랐을까….
가끔 기술의 진보를 원망해. 새로 얻은 몸에 씌운 가죽이 싸구려 플라스틱이었다면, 머리카락은 녹말 이쑤시개고 눈은 유리 구슬이었다면 마주치자마자 알았을 텐데. 그래봤자 어느 순간엔 반드시 플라스틱 피부에 생기는 기스를 신경 쓰고 유리 눈알을 닦아주게 됐겠지만. 껍질이야 어떻든 그 안에 들어있는 기억을 지나칠 수 없었을 테니까.
이젠 더는 내버려두고 싶지 않아. 그래서 편지를 써. 모르는 척 네 곁에 있으면 너는 또 언제든 죽어버릴 거잖아. 그렇게 소모될 거잖아.
기억해, 시몬? 네가 처음으로 나를 살려줬던 날.
*
최초의 기억은 늘 그런 식으로 재생된다. 고마움보다는 ‘차라리 아예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같은 미묘한 후회와 떫은 감상으로 반추하게 되는 순간 말이다. 카메라로 기록한 것도 아닌데 어떤 장면들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이를테면 정적을 깨는 목소리.
“죽지 마.”
“뭐라고?”
“죽지 말라고.”
그리고 듬성듬성 이 빠진 타일로 장식된 구식 인테리어의 욕실. 조명이 반쯤 닳아서 서로의 얼굴이 퍼렇게 보이고. 축축한 바닥에 한 쪽 무릎을 대고 꿇어앉은 남자의 표정은 막 죽으려던 동창생을 물에서 건져낸 사람의 것치곤 평온했다. 지쳐 있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하긴 울거나 질겁했다면 병원에 가야 하는 건 미나가 아니라 시몬 첼스턴이었을 테다. 알고 지낸 세월이 어림잡아 십몇 년인데 시몬의 찬 얼굴엔 이렇다 할 감정이 깃든 적이 없었다. 황당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을 때 눈썹을 찌푸리고 헛웃음 치는 걸 제외하면 대개는 평탄하고 무심한, 그래서 가끔은 얄미운 낯짝. 왜 살려냈냔 말에 대뜸 죽지 말라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내심 쪽도 팔려서 한참 댈 대답을 고민했다. 사실 죽으려던 건 아니다? 잠수 연습이었다? 살려줘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전하기엔 그도 나름대로의 상황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이유 없이 부아가 치밀어 입을 다물면 시몬은 답답하단 듯 덧붙였다.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어디에서 뭘?”
“어디든. 도시에도 극단은 존재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이 곳엔 있었고?”
글쎄. 미나 언더우드가 속으로 비아냥댔다. 백 번을 설명해도 시몬 첼스턴은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도시보다 한참은 낙후된 7구역의 무너져가는 극장과 녹슬어 쇳소리 나는 무대장치가 미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격’이 있고 ‘가치’가 있는 헤븐필드의 모든 시민권자가 눈과 팔과 뇌와 다리와 장기를 기계로 교체할 때 왜 미나는 그러지 않았는지. 도시의 극단과 도시에서 밀려나고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조잡한 7구역의 극단이 무엇이 다른지. 그는 시몬 첼스턴과 영원한 평행선을 걷고 있었다. 먼 발치에서 서로의 모습을 관조할 수는 있어도 그 안으로 침범할 수는 없었다. 살아온 삶부터가 달랐으므로.
미나 언더우드가 유년 시절의 태반을 보낸 사과 농장은 6구역의 끄트머리에 있었다. 도심에선 한참 떨어진 외곽이라 식사도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작물로 해결하는 곳이었다. 아카데미 입학 몇 년 전 있었던 정기 검사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부모의 냉정한 시선을 피해 거진 쫓겨나듯 도달했는데 수더분한 분위기의 숙모 가족이 웃는 얼굴로 미나를 맞았다. 식사용 알약으로 하루치 열량을 대체하는 헤븐필드의 도심에서 자란 탓에 그날 요리다운 요리를 처음 먹어봤다. 달큰하고 살짝 짭쪼름한 양념. 오래 끓여 부드럽게 씹히는 채소들의 감칠맛이 미뢰를 자극하는 생경한 감각.
그들을 통해 때론 사소한 것들이 삶을 지탱할 수도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숙모와 숙부는 여러모로 언더우드 부부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꽤 커다란 사과 농장의 주인이었던 그들은 7구역과 8구역의 방랑자들, 싱크로율이 떨어지는데도 억지로 몸에 기계를 끼워 맞춘 불법 개조인들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추방자들을 농장의 일꾼으로 고용했다. 돔의 인공 태양에 등이 시뻘겋게 익은 일꾼들은 저녁이면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아 노래 부르며 춤을 췄다. 대부분이 재앙 이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승된 오래전의 노래들이었다. 추임새를 넣는 숙모와 숙부 옆에서 쭈뼛대던 미나도 두 달이 지나자 일꾼의 자녀들에게 노래를 배웠다. 도시에선 느껴본 적 없는 타오르는 생명력이 그 곳에 있었다. 웃음소리와 열띤 활기,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감각 같은 것들이.
숙모의 어머니한테 물려받았다는 골동품들이 즐비한 다락방은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가수들의 목소리가 중앙네트워크가 아닌 LP판이나 CD에 저장되던 시절의 문화유산이 손바닥만한 방 안에 가득 쌓여 있었다. 겪어본 적도 없는 세상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네모난 테이프를 손끝으로 기계에 밀어넣고 버튼을 누르면 재생되는 지평선 너머의 풍경. 소행성 충돌로 지구의 절반이 파괴되기 전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지구 각지에서 살아갔다고 했다. 밤하늘을 연구하고 우주를 꿈꾸면서. 안드로이드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거란 말이 구인류의 오래된 농담이었다는데, 말마따나 도태된 일부를 제외하고 인류의 대부분이 기계를 몸에 장착하거나 아예 기계로 의식을 이전한 지금에 와선 영 농담이 아니게 되었다. 기계생명학 연구소 HRIM(Heavenfield Research Institute of Mechanobiology)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미나의 부모도 연구과정에서의 감정개입 제어를 위해 일찍이 머리에 기계를 삽입했다. 미나는 가끔 부모가 그런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다정하게 굴 수 있었을지가 궁금했다.
부모의 닦달에 1구역 중심지에 위치한 국립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위해 도시로 향한 건 열세 살 무렵이었다. 상위구역의 중산층 자녀들이라면 대부분이 거치는 과정이라고 했다. 상상했던 풍경과는 다르게 학생들은 태반이 상냥했고 교육 과정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일상의 어느 지점에서 미나는 반드시 멈춰서게 됐다. ‘기준’만 충족하면 누구든 입학할 수 있다는 학교에서 7구역이나 8구역의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자각하면 문득 숨이 막혔다. 누구도 그들의 삶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계도와 갱생을 논하며 시혜적인 시선을 던지는 연구자들만이 종종 존재할 뿐이었다. 분노보단 역겨움이, 역겨움보단 주제넘은 동정심이 앞서서 찾아왔다. ‘재건’은 소행성 충돌로 지구의 절반이 반파되는 재앙을 오직 인류의 힘만으로 극복해낸 기적이라고 평가받지만 어쩌면 그건 더한 재앙이었을지도 몰랐다. 신체 일부를 기계로 손쉽게 교체한다는 신기술을 무기삼아 재앙 이전의 기득권보다 배는 견고한 권력층이 형성됐다. 기계화 시술을 받지 못한 이들은 도태되어 지워지고 기계화 시술을 받은 이들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구조였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서로를 인지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로.
발 딛은 세계와 유리되고 있다는 기묘한 예감. 그걸 감각한 뒤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졸업과 동시에 미나는 누려온 모든 것들과 앞으로 누릴 수 있었을 모든 것들을 그 자리에 두고 도망치듯 도시를 떠났다. 누군가는 비겁하다고 욕하고 누군가는 기만적이라고 욕할 도망이었지만 아무래도 좋단 생각이 범람했다. 그가 그 자신으로 숨쉴 수 있는 공간은 숙모의 농장뿐이었다.
그리고 오랜 방황을 거쳐 농장에 도달했을 때엔 이미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었다.
일꾼으로 불법 개조자와 추방자들을 기용해 반역을 모의했다는 죄목이었댔다. 푸르게 우거진 나무의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부딪히는 소리와 일꾼들의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던 농장의 풍경은 전부가 불타 고요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쌓인 농장 옆의 가택에는 추억할 거리라고도 부르기 모호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그건 유일한 증거였다. 그들이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이 장소에 존재했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전부 죽었을까. 희망찬 상황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평생 농사만 지은 태생 농사꾼들이 신식 무기와 특공복으로 중무장한 평화유지군의 시선을 피해 도망칠 수 있었을 리가. 그럼 압송된 후에 살아나온 사람들이 있었을까. 애당초 그건 정말 반역 모의가 맞았을까. 정부는 종종 본보기로 7구역과 8구역의 불법개조자들을 잡아들여 ‘체제에 반기를 들었다’는 명목으로 처형했다. 구체적인 모의가 없었는데도 ‘범죄자’를 고용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슬리는 쓰레기 치우듯이 처리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부촌의 돼지들이 범죄자라 일컫는 7구역과 8구역의 일꾼들과 함께.
그 뒤로는 매일이 기억을 주워담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들이었다. 별다른 자금도 없이 떠났던 미나는 도시에 있는 부모에게로 돌아가는 대신 변변찮은 일자리를 구해 푼돈을 모으며 농장 사람들의 행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가끔 여유가 나면 유통이 금지된 재앙 이전의 문물을 취급하는 변두리의 골동품점에 들러 물건들을 구입하기도 했다. 마구 복사하는 바람에 품질이 원본보다 한참은 낮은 싸구려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고 재생하면 희미한 과거가 돌연 생생해졌다. 가물가물한 이름들이 형체를 띠고 노래했다. 삶은 그곳에 있었다. 즐거움과 행복과 웃음소리와 음악이, 눈을 온전히 마주하고 서로의 세계를 인식하는 생生의 감각이 그곳에 있었다.
슬픔을 소화할 겨를이 없었다. 소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견디던 날들이 존재했으므로. 전부를 구성하던 조각을 잃어버리고 난 뒤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면 나았을 텐데.
숙모와 아는 사이였다는 7구역의 극단 주인 멜라니와 연락이 닿은 건 그로부터 1년 가량이 흐른 시점이었다. 숙모 가족을 비롯해 대부분의 일꾼들이 1구역으로 잡혀갔고 소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소식과 함께였다. 예상했던 사실이었고 기대도 없었는데 왜인지 심장 언저리가 허전했다. 대답이 없는 미나에게 멜라니는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면 극단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멜라니의 극단은 문화생활이 금지된 7구역과 8구역의 뒷골목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나 규모가 꽤 되는 극단이었다. 도시에서 유행하던 자극적인 치정극이나 정치적 요소를 배제한 삼삼한 장르의 공연들과는 결이 다른 공연을 올렸는데, 관객들부터가 주로 도시에서 별 시답잖은 이유로 책잡혀 쫓겨난 추방자들이나 기준에 못 미쳐 시술을 받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 7구역으로 흘러들어온 불법개조인들이었으니 인기는 당연한 결과였다. 살 길을 찾아 헤매다 보면 부당함에 맞서지 못해 숨이 막히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멜라니 극단의 공연을 감상하는 건 전부 뒤집기 위해 외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해방구였다.
한참은 극장을 청소하거나 소품을 닦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잃은 것들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대사를 외치고 벅차오르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건 나름대로 즐거움을 주었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작동할 때의 열기, 인간임을 부정당하고 밀려난 이들의 분노와 슬픔, 밟을 수 없고 밟히지도 않을 의지력만이 주는 고양감이 존재했다. 반역이나 범죄 모의라는 말로, 어느 무엇이라고 차마 어설프게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클라이맥스 넘버를 따라 부르며 걸레질을 하다 멜라니에게 들킨 적도 있었다. 장난으로 무마하고 넘어갔지만 멜라니는 ‘쓸만하다’는 평을 내리며 종종 조연으로 무대에 오를 것을 제안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나니 공연이 거듭되고 극이 바뀔수록 비중이 점점 늘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더는 두렵지 않음을 자각했을 때 그는 이미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상처를 단숨에 극복하고 눈이 부시게 행복해지는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종착지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밀고로 들이닥친 평화유지군의 틈에서 시몬 첼스턴을 찾기 전까진.
군인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쏴죽이고 압송하는 난리통 속에서 미나는 홀로 살아남았다. 시몬 덕에. 미나를 발견한 시몬이 수갑 채워 헬기로 이송하는 대신 가만히 있지 말고 도망치라고 고갯짓했으니까. 정신없이 달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집 근처 골목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신 그 앞에 걸터앉아 방금을 곱씹었다. 이 모든 걸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새로운 무얼 찾으려 애를 쓴다 해도 그는 또 잃어버리고 말 것이었다. 혹은 두려워 도망치거나.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냐고 이야기하면 너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한심하단 듯이 혀를 차곤 매몰차게 떠날지도 모르지. 그제야 몽롱하던 시야가 선명해졌다. 물에 오래 담궈둔 탓에 손가락 끝의 피부가 잔뜩 불어 있었다.
“진짜 이대로 죽을 거야?”
그렇게 묻는 사람의 얼굴이 죽겠다 하면 그대로 돌아나갈 것처럼 차가워서 문득 웃음이 났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듯싶었다. 무거운 몸을 물에서 끌어올리느라 제복은 셔츠까지 푹 젖어 있었다. 동정이었을까. 적선하듯 내민 선의였을까. 시몬 첼스턴은 생판 남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시몬과 남이라기엔 가깝고 절친하다기엔 먼 미적지근한 사이를 유지한 지도 꽤 되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 훨씬 많았다.
삶의 이유라는 거. 별로 거창한 건 아니다. 오기든 행복이든 성취든 증명이든간에 연료 삼아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들. 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무엇이든 이유를 되찾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그러니까 허름한 집의 문을 두드리고 어깨를 흔들어 깨우며 죽지 말라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네가 아닌 그 누구라도 괜찮았는데.
왜 하필 너여야만 했는지.
*
시몬 첼스턴의 집은 1구역 도심에서도 그 중앙에 있었다. 평소에는 기지가 아니라 정부에서 제공한 1인용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모양이었다. 1인용 아파트라는 호칭이 무색하게 거실과 방 두어 개를 둔 집은 크기가 꽤 되는 만큼 휑했다. 하긴 가구점에 가 침대의 푹신한 정도를 비교하고 색색깔의 소파를 들이는 시몬 첼스턴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덜렁 놓인 무채색의 가구들마저 사용감이 없는 걸 보면 아파트보다는 직장의 간이 침실을 제 집마냥 사용하는 듯싶었다. ‘잘 들어오지도 않으니 네가 편한 대로 지내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무슨 대단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을 가지고 데리고 온 건 아니라는 걸 알긴 알았으나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친밀한 사이였다’고 평할 수 있을 법한, 딱 그 정도 거리감의 친구 내지는 아카데미 동창을 굳이 제 구역에 들인 이유가 뭔지. 미나 언더우드야 늘 사람 곁을 찾으니 그런 식으로 가까워졌다고 쳐도 둘의 성격 자체가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시몬 첼스턴은 늘 미나 언더우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졸업 후 도시를 떠나 6구역의 농장으로 가겠다고 이야기했을 때에도 시몬 첼스턴은 줄곧 이해가 가지 않는단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수 차례에 걸쳐 이어졌던 설명―내지는 핵심을 숨긴 변명을 그가 대충이라도 받아들이긴 했을까.
환대를 기대한 적은 없지만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었다. 그나마 회복을 위한 기간이 필요한 시점이었으니 다행이었다. 시몬을 따라 7구역을 떠나던 당시에는 도시에서 무엇이라도 시작해볼 요량이었으나 막상 짐을 얼추 정리하고 나니 그제야 감정이 몰려왔다. 단지 두루뭉술한 상실의 감각일 뿐이었던 것이 분노와 허망함으로 구체화됐다. 두 번을 겪으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본디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렇다. 중첩되면 중첩될수록 발목을 붙잡지. 영혼이 가라앉는 공포를 수렁 밖의 사람들은 모른다. 비겁하게 도망쳐서 살아남은 입장이니 그런 식의 자기연민도 기만이라면 기만이었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아득바득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때로 궁금하기도 했다. 뭘 잃으면 또 작은 것들로 그 틈을 채우고, 구멍이 나도 부서지지 않도록 삶을 버텨내면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몬을 따라온 건 어쩌면 조잡한 핑계였을지도 몰랐다. 시몬은 대단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행복의 가치나 도시 바깥의 사람들, 지저에 있지만 그럼에도 활력으로 빛나는 어떤 의지―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희망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부터 아주 먼 곳에 있었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삶을 짓밟으면서.
그런데도 네가 필요했던 건.
죽지 말라고 이야기해준 사람이 너였으니까.
*
근처의 식료품점에서 냉장고를 꽉 채울 정도로 재료를 구매한 건 딱 세 달이 지나던 날이었다.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이유 없이 허기가 졌다. 그리움에서 파생된 감정이기도 했다. 숙모와 숙부는 늘 편리함보다는 번거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미나의 피곤한 면―이를테면 식사용 알약이 훨씬 값싸고 간편한데도 굳이 식재료를 사 모으고 레시피를 봐 가며 요리해 끼니를 해결하는 면모같은 것들은 대부분 그들에게서 비롯됐다. 파이에 사과 잼 대신 얇게 저며 설탕에 졸인 사과를 넣는 습관, 하루 치의 에너지를 위해 아침은 꼭 정성 들여 준비하는 습관, 잎차와 황설탕을 끓여 만든 티 베이스에 우유를 타 먹는 습관처럼 사소한 것들까지도 전부. ‘감자를 포슬포슬하게 삶아 튀기고 진한 치즈 소스를 곁들인 뒤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 후레이크를 뿌린 치즈 포테이토’를 완성할 즈음 시몬이 퇴근했다. 익숙한 장소에서 생경한 냄새를 맡은 그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 무슨 날이야?”
“감자의 날.”
“쓰잘데기없는 기념일 좀 그만 만들라고 했지.”
감자의 날은 내가 만든 게 아니고 소행성 충돌 이전 UN이라는 세계 국제기구가 지정한 기념일이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미나는 일단 다시 입을 여는 대신 제 앞자리를 손으로 두드렸다. 더 잔소리했다간 또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가 잠이나 퍼질러 잘 것 같았다. 상을 가득 채운 감자 요리에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 시몬이 자리에 앉았다. 미나가 게슴츠레 웃었다.
“한술 떠.”
“먼저 먹지 않고?”
“오늘은 네가 주인공이니까.”
“왜 내가?”
“넌 감자잖아.”
대꾸도 않은 시몬이 감자튀김을 집는다. 기억 안 나? 예전엔 너 보고 감자라고 그렇게 놀렸는데. 부러 흐뭇한 얼굴로 케첩을 앞에 밀어줘도 튀김 씹는 소리만 들렸다. 추억 팔이나 하자고 감자 요리를 하루 종일 튀기고 삶고 끓이고 볶은 건 아니었다. 물론 정성 들여 놀리면 하염없이 구겨지는 미간을 오랜만에 구경하고 싶었던 건 맞지만.
“맛있지.”
“괜찮네.”
“내일도 해 줄게. 일찍 들어와.”
“되면.”
“저녁 같이 먹을 사람 없어서 외롭단 말야.”
고개만 끄덕이는 걸 보면 ‘고민해 볼게’ 정도의 뜻이렷다. 효력 없는 약속에 미나는 대충 만족했다. 애초에 국가기관의 퇴근 시간을 시몬 첼스턴 스스로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언제 어디로 파견을 가거나 출동해야 할지 모르니 퇴근하고서도 상시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청사 내부에 감옥같은 기숙사를 짓고 그 안에서만 생활하라고 하지 않은 게 용했다. 숨 쉬듯 연장되는 근무와 높은 업무 강도에도 시몬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눈 감는 삶이 비정상적이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하긴 일부 기득권이나 특정 직업을 제외하고 도시의 모든 노동자들의 생활이 그러했다.
매일 함께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지만 그 뒤로 시몬이 저녁 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오는 날이 늘었다. 정말 미나를 신경써줬을지 아니면 우연히 바쁘지 않은 기간이 맞물렸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즈음 미나도 직장을 구했다. 새 직장은 1구역 도심의 극장에 자주 극을 올리는 극단이었는데, 미나처럼 성대를 손보지 않은 사람들이 극단의 일원으로 뽑히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콧대 높은 배우들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 1이나 아동극의 합창하는 나무 역할도 괜찮다고 어필한 덕분이었을지도 몰랐다.
직장과 잘 맞는 건 아니었다. 실은 도시의 모든 것들이 그랬다. 극단의 연기자들은 죄다 성대나 얼굴 근육을 조금씩 손본 아카데미 엘리트들이었고 관객들은 문화생활을 향유할 여유가 되는 부촌의 부르주아였다. 극의 내용도 하나같이 고리타분했다. 결국 오즈의 마법사 각색본을 연습할 때 지루함이 최고조에 달해 시몬을 붙잡고 한탄한 적도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 뮤지컬인데 양철 나무꾼이 진짜 양철 로봇이라고. 미친 거지.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어?”
“걘 직업 잘 찾았네.”
“낭만이 없잖아. 이 메마른 자식아.”
“넌 무슨 역할 맡았는데?”
“서쪽 마녀.”
서쪽 마녀가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눈치였기 때문에 미나는 말을 줄였다. 어쨌거나 도시의 극단은 여러모로 7구역의 극단과 달랐다. 관객들 비위를 맞추는 게 우선이라 공연 뒤 반응이 좋지 않으면 각본을 수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무엇보다도 도시의 극단에는 생명력이 없었다. 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저 존재하는 사람들. 그저 존재할 뿐인 인물들. 목적이나 의지 없이. 내일을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 없이……. 도시의 대부분이 그렇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자잘한 단면들을 매일같이 들여다보며 사는 건 생각보다 괴로웠다.
시몬의 존재는 그런 면에서 중요했다. 때론 고되고 때론 억울한 날들을 혼자 전부 끌어안고 살아가기엔 버거우니까. 화가 날 때마다 품위 없게 욕하거나 시답잖은 농담거리로 치부하고 나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던 일들이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당장 내일 함께 먹을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주말에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기능했다. 거창하지 않은, 그럼에도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그에게 있었다.
미나 언더우드가 직접 정한 수많은 쓸데없는 기념일―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세 개 먹는 날, 사과 파이 열 판 굽는 날, 거실을 꾸미고 기념사진 찍는 날, 하루종일 스타워즈나 빽 투더 퓨처 같은 고릿적 SF 영화 보는 날, 시몬 첼스턴이 요리하는 날을 제외하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기념일은 생일이었다. 수많은 인공 배아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유전자 선별 기술의 발전으로 탄생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지만 미나에게 생일은 여전히 중요했다. 못생긴 삼단 케이크의 초를 불고 폭죽을 터트리며 서로에게 크림을 묻히던 과거가 있어 더 그랬다.
함께 지내면서 처음 맞은 시몬의 생일엔 직접 케이크를 구웠다. 일반적인 모양으로 하기엔 심심해 심혈을 기울여 감자 모양으로 깎기까지 한 케이크였다. 거실을 어지럽게 장식한 풍선과 탁자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삼단 감자 케이크에 얼이 빠진 시몬을 얼마나 놀렸는지. 초를 부는 당황한 얼굴에 크림을 잔뜩 묻히면 드물게 웃으며 반격하던 찰나를 기억한다.
그런 순간들. 얼굴이 웃기게 찍힌 비디오를 지우니마니 하는 일로 티격대던 날들.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으로 가면 반드시 서로를 만나게 된다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기던 날들과 정말 이대로 평생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던 날들.
그 모든 날들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말하면 너는 날 기다려 줄까.
*
시몬은 기억을 백업해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자주 이야기했다.
도시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은 존재 자체가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연구소의 시스템에 기억을 백업해두기 때문이었다. 특히 시몬처럼 신체가 파괴되거나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공무원들은 원치 않아도 기억 백업이 강제되었다. 구인류의 유물로 남은 죽음을 애써 체험하길 바라는 사람은 도시에 없었다. 그 덕에 너무 오랫동안 삶을 지속했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존엄사를 택하는 몇을 제외하면 모두가 ‘영생’을 누리고 있었다. 다만 미나는 외형을 본따 만든 클론에 백업된 기억만을 이식한다고 해서 그게 정말 ‘끊김 없이’ 이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애당초 기억 백업 시스템은 정부가 직접 고안한 족쇄였다. ‘본래의 신체가 파괴되어도 새 신체를 지급한다’는 건 ‘죽거나 크게 다쳐도 괜찮다’, ‘직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내 죽음이 두려운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사실 상대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미나였다. 시몬은 너무 위험한 환경에 공포라는 보호장치 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시몬 첼스턴은 주저 않고 목숨을 담보로 쓸 것이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그 뒤에 백업된 기억을 이식받아 집의 문을 두드릴 클론을 미나는 어떤 표정으로 맞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일상이 오래 이어졌다. 서로의 가까운 곳에 존재하면서도 이해로부터는 멀리 떨어진 일상이었다. 마찰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이 두려움에서 파생된 마찰이었을 테다. 지금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 오는. 그렇게 부딪힐 때마다 각자에게 나름대로의 상처를 줬지만 시몬 첼스턴은 얇은 천을 꺼내 그 위에 덮어두었고 미나 언더우드도 천을 들추지 않았다.
노력이 무색하게 무언가를 잃어버린 건 삼년 가량을 함께 보내고 맞았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시몬 첼스턴이 죽었다.
*
간만의 휴일이었던 것 같다. 산책 겸 바람을 쐬러 잠시 시내를 걷고 있었는데 주변이 소란스러웠다. 멀리서부터 파열음이 울리더니 몇몇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고개를 돌렸을 땐 거대한 기둥이 무너지고 있었다.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감았는데 통증 대신 좋지 않은 예감이 찾아왔다. 시선이 자연스레 바닥으로 갔다.
쓰러진 시몬은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통각을 차단해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혈흔으로 더럽혀진 얼굴이 유독 고통스러워 보였다. 착각이거나 꿈일 거라고 부정하기엔 시야에 담긴 풍경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숨이 끊어지는 걸 목격했지만 눈물로 작별할 시간은 없었다. 특공복을 입은 군인들이 바쁘게 사람들을 이송했다. 시체를 이송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경상을 입은 시민들은 구급차를 부르거나 병원에 갔을 테니까. 아마 ‘새 신체’로 죽어버린 몸을 바꾸기 위한 이송이었을 테다. 실려간 시몬이 있었던 자리는 핏자국으로 어지러웠다.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반군의 기습 테러였다고 했다. 시민 몇몇의 신체를 소모하고 건물이 무너진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는데, 실제로 당시의 사건은 뉴스에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좋던 나쁘던 ‘반군’이라는 결집 자체에 힘을 실어주는 걸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은 죽은 지 정확히 삼 주가 되는 날 돌아왔다.
*
오래 전, 죽으려거든 돌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매몰차게 이야기했던 건 미나가 그의 죽음을 겪어본 적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시몬이 없는 집에서 그는 오랫동안 시몬에 대해 생각했다. 넌 항상 끔찍한 방식으로 나를 살리지. 그러고는 내게 살아가라고 말하잖아. 정말 언젠가는, 만약 시몬 첼스턴이 죽는다면, 클론으로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다. 때로는 아예 시몬 첼스턴이라는 사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들을 떠올리면 미나는 반드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됐다. 그리고 그 또한 그러하기를 바라게 됐다.
착각은 쉬웠다. 화를 내고 부정해도 클론은 언제나 미나가 기대하는 가장 그다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를 ‘시몬 첼스턴’이라고 완전히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시몬과 비슷한 무언가였다. 그리고 미나 언더우드는 무엇이 되었든 그 존재 자체가 간절했다. 죽음 이후의 귀환이 없었더라면 차라리 그의 존재를 조금이나마 지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숙모와 숙부, 농장의 사람들과 7구역 극단의 배우들이 그러했듯이. 추억만 발라내어 삶의 양분으로 삼았더라면, 잠깐은 그리워도 또 그럭저럭 살아가게 됐을 텐데. 시몬은 몇 번을 죽어도 새 몸으로 돌아왔으므로 미나는 그가 끊임없이 그리웠다. 모순이었다.
몇 달이 그렇게 지나갔다. 모래성을 지어두고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착각하면서. 뭍으로 나온 물고기마냥, 숨이 막혀 허덕이는 순간들의 연속. 그 집합을 여전히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는 때때로 궁금했다.
그리고 미나 언더우드는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시몬 첼스턴의 삶이 소모품처럼 사용되어 버려질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심장이 답답할 즈음에 도망쳤다.
*
항상 궁금했어. 너는 왜 늘 나를 살릴까. 죽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걸맞은 이유를 내 손에 쥐여줄까. 넌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닌데. 왜 난 네게서 내가 찾던 것들을 결국엔 찾아냈을까. 아직도 완전한 해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무엇이든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오래 했어. 이제야 결심했을 뿐이지. 하지만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는 걸 너도 알잖아.
반군에 합류할 거야. 헤븐필드의 모든 걸 부수기 위해서 움직이려고 해. 난 항상 재앙 이전의 풍경을 그리워했지. 영생도 편리함을 위해 개조된 기계 신체도 없는 곳. 숲과 바다가 있고 각각의 삶을 스스로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곳. 감히 꿈꿔볼래. 더는 너의 죽음과 소모를 두려워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그래서 함께 지평선 너머의 풍경을 보는 날도 언젠가는 오기를.
너를 살리고자 하는 건 오직 나의 욕심이지.
전부 너를 위한 일이었다는 서투른 변명은 하지 않을래. 이건 나를 위한 혁명이야.
화를 내도 좋아. 슬퍼할 것 같지는 않지만. 얄미운 세입자가 돈도 안 내고 눌러살다가 멋대로 떠났다고 신고를 해도 되고. 그냥 그렇게 나에 대해 계속 생각해. 기억하고 떠올려. 고작 전산망 따위의 것들에 백업해두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을 수 있게. 그럼 그런 기억을 빌미 삼아 꼭 네게로 돌아갈게.
삶을 선물해 줘서 고마워. 그건 네가 내게 준 것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어.
다시 만나자. 미나 언더우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