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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른 기억은 제 앞에 있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무언가 깨달은 듯한 낯을 지은 채 그저 응시한다. 그 또한 저를 응시하고 있을 테다. 도저히 믿기지 않은 연속된 우연. 차곡차곡 쌓아 올려진 감정은 운명이라는 단어로 서로를 만나게 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고 무의식 은연중 동경하던 빛이, 그동안 소중히 여겨왔던 빛이 이곳에 존재한다. 세간에서는 이 말을 기적이라고 하던데. 이곳에 당신은 저에게 정말 기적이어서.
“…너, 너.”
“이제 알았나 보네.”
여태껏 대화에 따른 결과에 의하면, 상대가 말한 빛은 바로 저일 것이다.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한 전제인지라 조금은 당황스러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당황스러움의 기저에 깔린 건 결국 당신을 만나 기쁘다는 감정일 테고, 또한 당신이 이곳에 여전히 존재해 외로움을 이겨냈다는 감각에 대한 위로이며, 동시에 이 마음을 간직해주고 나를 잊지 않은 채 저를 빛으로 여겼다는 사실에 대한 행복이었다. 정말, 이렇게 도달할 줄은 몰랐던 거라.
그러니 통신이 끊겼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나 변명은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이곳에 닿은 사실만으로, 이곳에 닿아 당신이라는 존재를 만난 것으로도 이미 엄청난 것에 속해있는데. 굳이 지난날의 부정적인 면을 꺼낼 필요가 있는가? 부정적인 면을 많이 가진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상당히 웃긴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들을 전부 떨쳐낼 정도로 깨달은 현실의 상황은 무엇보다도 비현실적이고, 누리기에 급급했으므로. 그러니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기쁨을 온전히 만끽하기로 해서.
당신도 같은 마음일까 궁금했다. 이곳에서, 혼자 우주의 왜소행성이 되어 지나는 순간에 당신은 무엇을 그리며 기다려왔을까. 온전한 빛이라고 느낀 건 그 때문일까. 빛을 바라며 기다려왔던 당신의 순간에 무슨 상황이 존재했고, 어느새 비로소 빛이 될 수 있었던 걸까. 당신은 부정할지 모르는 일이라고 하여도 쏟아져 내리는 감정에 차마 말을 고르지 못한 채 생각이 오갔던 것 같다. 겨우내 진정하라며 말을 꺼내오는 건 당신. 또 빛이 먼저 이끌어서.
“다시 만나서 기뻐요. 진짜 빛 같네….”
“딱히 너에게 빛처럼 행동하지 않았는데?”
“그래도요. 날 여기에서 찾아준 건 당신이니까.”
“…바보네. 실제로 봐도 생각보다 엄청 바보야.”
빛인 줄 알았는데, 사실 바보였다고. 스스로 빛나 이곳까지 이끈 게 당신이면서 저를 빛으로 여긴다니, 어느 하나 미련하지 않은 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빛나며 살아온 당신이다. 안드로이드에게 살아온다는 개념을 말해도 괜찮은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는 이곳에 살아왔음이 분명했기에. 우주 속 안드로이드. 그리고 저를 온전히 그려온 당신. 이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할지 조금은 고민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저는 여태껏 잊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은연중 당신이 알려준 빛을 찾고 있었고, 당신의 말에 따라 지향점을 얻고 살아왔던 부분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래도 온전히 당신을 기억 속에 담은 채 살아온 게 아니었을 테다. 마음에 존재하고 당신은 언제나 제 안에서 살아왔겠으나, 제 기억에 온전히 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미안하다는 감각이 차오를 수밖에.
“바보는 누군데. 잊으면서 우리가 이야기한 대로 살고 있었잖아요?”
“…바보는 아니지만, 잊은 것도 사실이잖아.”
“딱히 잊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잘 살아왔는걸.”
“어떤 부분에서 빛을 품으며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냥 다요. 정말 우주에 대해 공부해서, 우주에 도달해 이곳까지 와 나를 만난 것까지.”
“하여간…”
대화는 지속됐다. 지금까지 기억해주어서 고맙다는 말, 잊지 말고 살아주어서 대단하다는 말과 아무튼 간에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말. 위로의 말, 공감의 말. 보답의 말.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이곳에서, 아마 긍정적인 빛의 집합체를 모은다면 제일 강할 거라고. 그만큼 시공간을 넘어선 만남은 정말 다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신은 이곳에서 나를 위해 빛을 계속해서 비춰주던 이다. 그렇다면 이제 제가 당신을 비춰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외로움을 이겨냄에 있어서 보답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홀로 우주에서 작은 행성이 된 자에게 곁에 함께 있어 줄 위성이 되어주어야 할 때라고. 애초에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는 존재, 함께 지구를 벗어나 우주미아가 된 존재들이 이곳에서 영영 함께할 수 있다면 그보다도 좋은 건 존재하지 않을 거라고.
“이제 함께 있을 수 있겠네.”
“…….”
“이제 통신이 끊기는 일은 영영 존재하지 않을 거야.”
아마 이 우주에 남은 우리가 지구에게로 가닿을 통신은 영영 이어지지 않을지도 몰라도, 적어도 서로를 향한 메시지는 이곳에 영영 남아 존재할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알 수 있다. 점차 이곳에서 존재하는 게 환상과 현실 그 중간에 땅을 디디고 서 있을 거라는 걸. 그러나 상관없었다. 현실을 벗어나 겨우내 환상에 도달하더라도, 이제 의지하며 살아갈 테니 시련은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점차 편안해지는 감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긴장이 풀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제 우주에 영원히 존재할 테니까. 의지 되는 존재와 함께 안주할 곳을 찾은 거니까. 그러니 이제 부담이나 두려움은 모두 떨쳐낸 채 이곳에 서로 기대면 전부 괜찮을 것이라고. 그리 생각하자 조금은 웃음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제 영원히 잊지 않고 서로를 비춰주는 일만 남았다. 전부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 어쩐지 이상하게 전부 괜찮을 것 같았다.
긴긴 우주를 함께 항해할 존재들에게 축복이 내려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