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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산업혁명 이래로 시작된 인간들의 비이성적인 화석 연료 소모. 나날이 식을 줄 모르는 대중들의 농익은 욕망과 그에서 비롯된 황금만능주의. 가지면 가질수록 더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었기에 우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무한한 풍요. 끊일 줄 모르는 사치. 이 모든 추구가 우리들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 이제 밖에 나갈 때 보호 장비가 있는 두터운 옷을 입지 않는다면 오래지 않아 살갗이 타 버리고 만다는 것은 이 땅 아래 사람이라면 갓난아기라도 알 법한 사실이었다. 그마저도 매우 값비싸 일반 서민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가격. 인터넷과 각종 커뮤니티는 보호 장구 대여를 요청하는 사람들로 아우성이었다. 수없이 발전한 과학 기술도 우리에게 찬란했던 과거의 자유를 되돌려주지는 못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태양 아래에서 타들어 죽어갔다. 이제는 오늘 몇 명이 죽었노라고 뉴스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지독히도 끈질긴 존재인지라, 그 지옥같은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 방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벙커 프로젝트’. 태양 아래 서 있기 어렵다면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그렇게 땅을 파고 들어갔다. 산업 혁명으로 새 시대가 도래한지 정확히 300년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지하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하늘을 모른다. 그들이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푸른 저 상공은 프로젝터에 의해 구현된 증강 현실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푸른 하늘을 보고 자란 세대는 벌써 노인이 되어버렸고, 그들은 가끔씩 상공의 인공 하늘을 개탄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허나 지하의 공간은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암흑의 시대에도 아이들은 태어났고,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는 인구를 지하의 비좁은 벙커는 더 이상 감당해낼 수 없었다. 지하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그 밖의 세상을 알지 못하나, 과거의 찬란을 기억하던 이들은 이윽고 노쇠한 몸을 끌고 모여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수십년 전의 우리는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땅을 파고 들어갔다. 지상은 이제 도저히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공간이라 부를 수 없다. 우리가 더 이상 지구에서 남아있을 곳은 없다. 그렇다면….

  보이저 1호는 1990년 지구의 사진을 찍었고, 그 이래로 우리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러왔다.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촬영한 희미한 푸른색 형상. 저 검은 우주를 탐험하여 미지를 밝히겠다는 낭만이 있던 시대. 이제 그 푸른 별에서 낭만은 바람처럼 사라진지 오래다. 언젠가 이 행성에도 봄과 가을이라는 게 있었다더라. 빛 바랜 파란 속에서 아이들은 계절을 역사 수업으로 배웠다. 이제는 그 누구도 하늘 너머 암흑을 낭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에게 우주는 오로지 생존을 위한 도피처였다.

 

창공

 우주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벙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태양의 슈퍼 플레어가 지구를 강타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주에 대한 탐사가 활발했었다고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수많은 화석 연료의 소비로 얇아진 오존층. 태양의 슈퍼 플레어가 지구까지 닿았을 때 더 이상 그것은 보호막으로서의 무언가도 해 줄 수 없는 얇은 층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타들어갈 것처럼 변한 지구 겉표면에서 살 수 없어진 인간들에게 저 넓은 검은 미지를 향한 탐사는 사치에 불과했다. 

 모든 자원은 벙커 프로젝트를 위해 투입되었다. 과거의 기록을 유지하고 보존할 자원까지도.

 그러니 우리는 저 암흑 속을 무지의 상태로 걸어가야만 했다.

 

에반, 

응?

내일이네.

그렇지.

 

 떨려? 에벨리아가 입을 벙긋이며 물었다. 아니, 그다지. 남자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아.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여자는 에반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여자는 그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 응, 사실 잘 모르겠어. 에반은 결국 웃음을 터뜨린다. 이내 다시 정적이 흐른다. 

 저 창공 그 너머를 향한 첫 탐사. 연합 정부는 전 대륙을 통틀어 플레어 후 첫 우주 탐사에 자원할 인원을 모집했다. 걸린 비용은 실로 상당했으나 그에 비해 유의미한 지원자는 많지 않았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저 드넓은 우주를 떠돌면서 태양 플레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그러면서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 속에서 목숨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요건을 받아들일 사람이 많을 리도 만무했다. 많은 돈을 준다고 하여도 소위 말하는 목숨값 아닌가, 세간에는 그러한 소문이 돌았다. 이런 미친 요건에 자원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이거나, 미친 사람일 것이다.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탐사에 나서겠다고 할 리가 없다…. 

 에반 노스페라투는 항공우주 연구원이었으며, 동시에 새로운 행성을 찾아 이주하겠다는 정신 나간 이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부터 이를 계획하고 준비해온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허나 남자는 그 누구에게도 이 프로젝트에 어쩌다가 지원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설령 그리 물은 것이 그가 사랑하는 연인일지라도. 우주선이 완공되던 그날, 그는 에벨리아 셸던에게 넌지시 물었다. 내가 우주로 가면 어떨 것 같아? 돌아오는 거야? 글쎄, 솔직히 잘 모르겠어. 나는 네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에반. 남자의 시선은 상대에게 머물렀다. 나도, 내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꼭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야?

 아니,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무엇을 위해서 떠나는 것인지, 그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그 모든 대답을 대신한 건 침묵이었다.

… 나는 네가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어.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 에반 노스페라투는 저 창공을 담은 그 눈을 온전히 응시한다. 네 눈과 같은 하늘을 지나 나는 암흑으로 가겠지. 내가, 이 푸르른 창공을 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너를 두고 내가 저 광활한 공허에서 버틸 수 있을까. 순간의 상념은 파도가 되어 그를 집어삼키고, 메마른 단어는 입에 달라붙어 차마 음성이 되지 못한 채로 바닥에 떨어진다. 남자는 지긋이 눈을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올 거야.

 … 있지, 에반. 그게 왜 너여야만 했냐고는 묻지 않을게. 분명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걸 난 알아. 아무 이유 없이 네가 나를 떠나는 선택을 했을 리는 없으니까, 다만….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면, 꼭 말해줘.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 그래, 사랑해.

 돌아오지 못할 사람처럼 그렇게 말하지 말고.

 내가 네게 거짓말을 한 적 없는 거 알잖아. 돌아올 거야. 그래야만 하고.

 

 소등. 공간을 지탱하고 있던 실낱같은 불빛이 꺼지자 암흑 속에 두 사람의 숨결만이 남았다. 가까스로 상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 그럼에도 느껴지는 익숙한 온도.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공백 속, 상대가 누구인지 볼 수 없음에도 온전히 그를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서로의 체온. 에반 노스페라투는 천천히 에벨리아 셸던의 소매를 제 쪽으로 당기고, 가까워진 지척의 숨결에서 기도문을 읊조리듯 입을 맞춘다. 이 입맞춤은 이별의 것이 아니다. 창공을 담은 당신과의 재회를 기약하는 표식이니, 우리는 떨어져 있더라도 이 온도로 서로를 기억할 것이다. 

 

 


***

 

 

 치지직,

 

 여유로운 저녁에 울려퍼지는 클래식. 부드럽게 흐르는 첼로 선율. 그리고 그 여유를 가르는 기계음. 책장을 넘기던 여자의 손이 멈춘다. 리아에게. 그토록 익숙한 음성에 여자는 소리 앞으로 걸어간다. 잘 들려? 이어지는 소리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여자는 자리에 앉아 기기의 소리를 키운다. … 에반. 이 푸른 별을 떠난 지 35일만에 도달한 흐릿한 남자의 음성이 미약한 온기를 품은 채 전해져오자 에벨리아 셸던은 그를 온전히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는다. 

 

 잘 지내고 있어? 나는 잘 지내. 이 음성이 네게 언제쯤 닿을지는 모르겠어. 네가 없는 것만 제외한다면 여기는 생각보다 지낼만 해. 도킹에 무리 없이 성공했고, 지금은 연구 때문에 잠깐간 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어. 받아야 할 데이터가 생각보다 많아서 말이야.

 네가 나 없이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네가 나를 많이 그리워했으면 좋겠어. 나 때문에 잠을 못 자기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를 때때로 걱정해줬으면 좋겠어. 나 참 나쁜 사람이다, 그렇지….

 여기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그저 푸르르기만 해. 마치 태양 플레어가 언제 있었냐는 것처럼, 어린 시절 책으로 배웠던 것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모습이야. 초록이 덜한 것만 빼면 말이야. 그 때문에 바다가 더 푸르게 보이는 것 같아. 눈이 시릴 정도로.

 나는 네가 보고 싶을 때마다 지구를 바라봐.

 저 푸른 별 어딘가에서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 파아란 모습을 바라보면, 나를 오롯이 응시하던 네 눈을 기억할 수 있어. 창공을 담은 네 눈을. 떨어져 있어도 잊지 않게 도와주는 것처럼…. 그러니 너도 내가 보고 싶을 때는 창공으로 시선을 돌려줘. 나는 늘 지구만을 보고 있으니, 네가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의 시선은 결국 맞닿아 있는 거야. 약속해. 영영 가 버리지 않아. 돌아올 거야. 언제나처럼.

 텍스트로 보내려다가 결국 음성 메세지로 보내게 되네. 이 말은 꼭 내 입으로 해 주고 싶어서.

 사랑해.

 

 다시금 찾아오는 고요. 음성 메세지가 끝난 이후에도 여자는 기기를 한참 동안 응시한다. 너는 네가 찾고 싶던 것을 찾았을까. 에벨리아 셸던은 아직도 그가 왜 떠나야만 했는지 알지 못한다. 에반 노스페라투는 이 별을 떠나는 그날까지도 그가 자발적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를 여자에게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벨리아 셸던이 오롯이 믿는 것은, 에반 노스페라투가 떠난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에반 노스페라투는 자신을 사랑하고, 반드시 제 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것. 

 남자는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한참간의 고요를 깨고 에벨리아 셸던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여자는 천천히 찬장으로 걸어가, 루이보스 티를 꺼낸다. 익숙하게 탁자에 놓여 있던 포트에 찻잎을 두어 스푼 넣은 후, 물을 받아 불을 올리기 시작한다. 때마침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물은 끓어오르며 불규칙한 소리를 내고, 루이보스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잠깐 간의 고요. 이윽고 여자는 천천히 티베이스를 걸러내며 생각한다. 내가 불안해하던 날이면, 네가 내게 해 주던 밀크티. 나는 아직 불안해. 혹여라도 네가 잘못될까봐. 그리고 불안할 때 언제나 내 손을 잡아주던 너는 내 곁에 없어. 에벨리아 셸던은 가장 좋아하는 잔을 꺼내어 밀크티를 내리고, 잔을 든 채로 다시 기기 앞으로 돌아간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분명 안정감을 주지만 그럼에도 너의 것과는 다르다. 나는 네가 필요해.

 

 에반.

 기기 앞에 앉은 에벨리아 셸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잘 지내고 있다면 거짓말이겠지. 네가 정말 보고 싶어. 하지만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나는 여전히 일을 잘 하고 있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있어. 다만 때때로 네 빈자리를 느껴 조금 서글퍼질 뿐이야. 그래도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조금 마음이 놓여. 네가 바쁠까봐 연락을 먼저 넣지 못했거든.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 혹여라도 잘못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었어.

 TV에서는 하루 종일 네가 참여한 프로젝트 이야기만 흘러나와. 누군가는 미쳤다고 하고, 누군가는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해. 그 누구도 네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믿지 않아. 하지만 나는 믿어. 너는 분명히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고, 너는 내게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불확실성 속에서 갖는 믿음은 언제나 불안해. 그 누구도 이 믿음을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더더욱. 그렇다고 해서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아. 나는 네가 그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불안해하던 날이면 너는 내게 밀크티를 내어주고는 했었지. 이제는 너를 생각하고 불안해질 때마다 내가 직접 하고 있지만 말이야. 이 메세지를 전하는 지금도, 내 손에는 루이보스 밀크티가 있어. 전해져오는 온기는 분명히 따스하지만 네게서 얻었던 온도와는 달라. 나는 네 체온으로 너를 기억하니까.

 저 하늘 어딘가에 네가 있겠지.

 네 말대로 내가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의 시선은 닿을지도 몰라.

 네가 보고 싶을 때, 이제는 하늘을 바라볼게. 너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저 창공 어딘가에는 네가 있을 테니까. 돌아와야 해. 나는 너를 온전히 기다릴거야.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지. 바로 너와 나의 관계처럼.

 나도, 꼭 내 입으로 말해주고 싶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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