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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이 수신되는 계절

 

 

4월 1일.

 

어느날 예고 없이, 재앙은 목전까지 차오른다. 혹자는 거짓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다 했다. 제 아무리 감명깊은 명언이라도 현실이 버거운 이들에게는 거짓으로 치부될 게 뻔한 이 세계에서, 입으로 내뱉은 무수한 다정들은 환경에 흔들려 혐오로 전락한지 오래다. 우리는 재앙이다. 한 번도 재앙이 되지 못한 사람은 없다. 평균을 유지하는 치들이 우월감을 누리려 또 다른 재앙을 폄하해갈 뿐이라고… 우주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이는 생각했다.

 

그 누구에게도 공유할 수 없는 잔인한 사고를 갈무리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우유를 넣지 않은 홍차 두 잔을 우린다. 나를 이 세계에 붙잡아둔 재앙과 차를 마신다. 출신지가 다른 두 재앙이 창백한 푸른 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직장으로 향한다.

 

“오늘 차는 너무 떫었어...”

“평소 마시는 대로 우유를 안 넣어서 그래.”

“왜 그랬어?”

“4월 1일이라서.”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걷는 두 사람의 거리감은 좁았고, 내딛는 간격은 오차 없이 일정했다. 4월이 시작된 것 치고는 대화는 지극히 고요하고, 또 진실만이 맴돌았다. 거짓을 가감없이 입에 담으며 상처를 주려는 행위는 없었다. 평소와 같았다. 수차례의 재앙을 겪고 난 우리는 평화를 되찾은지 오래다. 우주인과 지구인은 서로의 손을 강하게 붙든다. 일정하고 적당하되 상당한, 그런 하루로 끝맺을 수 있을 거란 착각이 일 만큼.

 

정문을 열고 들어간 뒤, 평소대로 우주를 관측하려는 찰나. 우주인의 시야에 평소와 다른 것이 포착된다. 동료의 낯이 창백하게 질려있다. 꼭 새파란 바다색 같았다.

 

 

 

“에이프릴, 로이. 이것 좀 봐줘야겠어.”

 

우주인의 이름은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 지구인의 이름은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

 

“방금 우주에서 음성 수신이 왔는데, 그 목소리를 분석해 보니…”

 

우주에서 지구인 아닌 로이의 목소리가 수신됐다.

 

[에이프릴.]

[들려?]

[우주로 와 줘.]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마침 오늘은 재앙이 난무하는 달의 서막을 여는 날이었다.

 

 

 

-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는 우주로 향해야 하는가? 간단해질 수 없는 명제를 두고 당사자가 아닌 자들만 언쟁을 벌였다.

 

그는 우주로 향해야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애초에 목소리의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잖아. 프로그램 분석에 의하면 99.9% 확률로 로이의 목소리가 맞아. 평행 우주 이론은 완전히 사장된 줄 알았더니, 이 일을 계기로 다시 살아나겠군. 알렉스가 좋아하겠는데. 딴소리 하지 마. 미래의 목소리일 가능성도 있지 않나. 과거라면 모를까, 미래라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미래라면 로이의 후손일 가능성이 더 높을걸. 미래를 어떻게 확신하지? 그만들 싸우고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그를 보낸다 쳐, 그래서 어디로? …마치 우주에 가서 죽으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울 것 같은 표정이 된 로이가 손을 들었다.

 

“에이프릴의 의견을 듣는 게 먼저잖아요.”

 

잘게 떨리는 손짓마저도 단호한 음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탐구심으로 번뜩이는 눈을 뜨던 이들도 일동 침묵한다. 지금도, 방금도. 음성의 주인은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 뿐이기에,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 역시 비집고 들어갈 틈 없었다. 그 사실이 서글펐나. 고작 그 뿐인 관계고 감정이었던가. 우주를 빗댈 수 있을 만큼 깊었는데, 왜 우리는 서로에게 파고들 수 없는 건지. 알 턱이 없다.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로이는 평소엔 바라지도 않는 확신을 바랐다.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답해달라고 요구하듯이 시선 떼어내지 않았다. 절박함을 증명하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아 실핏줄이 돋았다.

 

“...어쩌고 싶어?”

 

절박하게 호소하는 음성에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선 말하자면, 단조롭다. 여상한 미소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확신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가겠다고 할 수도 가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다. 감정에 따라 모든 선택지를 고른다면 인생이 망가지고 마니까.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가 망가진다면, 그가 탄생한 별은 멸망하고 만다. 본인의 목숨만 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어쩌고 싶은 걸까?”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의 수신에 응답하기 어렵다.

 

에이프릴은 웃었다.

로이는 웃지 않았다.

 

평소와 같지만, 평소와 같지 않다. 로이에게는 이 상황이 견딜 수 없는 압박으로 다가왔고, 에이프릴과 같은 곳에 머무르기 힘겨워진 탓에. 등을 돌려 문고리를 잡았다. 탁, 하고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뒷통수가 사라진 후에도 시선 떼어내지 못한 에이프릴은 손을 올려 제 입을 가린다. 어떻게 해야 옳은 걸까… 차선책을 고르기 위해 사고회로를 돌린다. 핑, 핑 돌아가는 사고 흐름은 범재도 수재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의될 수 없는 관념적인 무언가가 된다. 그 도중, 제 3자는 손틈 사이로 호선을 목격했다 증언한다.

 

방금도 웃어야 할 상황이었던가?

 

 

 

-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울린다.

 

“나야. 로이.”

“...왜 왔어?”

“확인이 필요해.”

 

대체 무엇을 위한 확인이… 로이는 영 탐탁치 못한 표정으로 그대로 문에 기댄다. 탈력감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여기서 해, 에이프릴…”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서?” 설핏 읊조린 에이프릴의 다정한 목소리가 로이의 몸을 휘감고 지나간다. 안다. 지금은 투정부릴 시간도 아깝다는 거. 하지만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이 막막하다.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의 삶은 노력으로 쌓아올렸고,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은 이때까지 한 번도 존재치 않았다. 그의 삶에서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만이 예외가 된다. “응. 외면 좀 해주면 안되나…” 웅얼거리며 바닥에 맴도는 목소리가 중력에 의해 오랫동안 잔재한다.

 

“외면한다면 나는 외로워질걸.”

“온 우주를 뒤져봐도 내가 확인한 건 너 하나 뿐일 테니까.”

 

열어줘.

부탁이되 명령처럼 들린 단어였다.

 

끼익, 문이 열려봤자 기적적인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우주를 넘어 만난 것도 아닐 뿐더러, 고작 몇 시간 동안의 단절으로 무언가가 변하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평이한 태도에 더욱 불안이 가중되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에이프릴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야, 아까부터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네게 줄 사랑은 차고 넘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로이 랭커스터에게 줄 사랑은 없다. -고. 오직 아리스티데의 이름을 지녀 8월 31일에 심장을 바친 사람을 원했다. 그 사람만을 기억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살아가며 로이 랭커스터란 개체를 버릴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를 위해 너를 버릴 수도 있구나. 싶어 실소 흘린다.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는 그렇게나 잔인한 계절이었다…

 

“네가 내 차선이자 차악이야.”

 

일방적인 사랑이었다.

 

“설마 가버렸을까봐.”

“불시착한 이곳에서만, 너를 찾을 수 있어.”

“너를 발견할 수 있어.”

“너도 언젠가는 나를…”

 

이루어질 일 없는 갈망이었다. 하나, 온 우주를 뒤져봐도 대체제를 찾을 수 없다. 로이 아리스티데 랭커스터도 에이프릴 메모리아 옥타드를 ■■■■■ ■■ ■ ■■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당신의 심장을 가르고 지나간 그 흉에 맹세코. 지워질 일 없는 저주가 축복이 될 때까지. 이 우주가 멸망할 순간마저도 사랑을 삼켜낼 것이다.

 

칠흑같은 하늘, 달빛만이 비춰지는 밤이 열렸다. 새벽을 맞이할 준비는 필수불가결이다.

 

 

 

-

 

에이프릴은 목소리를 수신한다.

 

23:59:04

 

“안녕.”

 

23:59:21

 

“들려?”

 

23:59:37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어.”


23:59:59

 

“나는 이 지구에서 외로운 너를 관측할게.”

 

.

.

.

 

4월 2일. 그렇게, 잔인하고 거짓말같은 하루가 끝이 났다.

 

하나의 별이 멸망하고, 지구는 존재 명명을 성공하고서.

 

수신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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