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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마치 잠든 사람 같았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엔 검은 기름이 묻어 거뭇한 것 외에는 별다른 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 연한 갈색이라고도 할 수 없고 밝은 금발이라고도 부르기 어려운 오묘한 색의 속눈썹 아래 눈이 무슨 빛인지 궁금했다. 억지로 눈을 벌려 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거야 너무 깊게 잠든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깨우면 안 될 것 같았다. 길게 기른 머리카락이 사이사이에 걸려 있었다. 잠결에 움직여 흐트러진 모습과 같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목에는 무딘 날을 가진 육중한 물체에 짓눌려 파쇄된 흔적이 있었다. 단추가 몇 개 뜯어진 와이셔츠는 색이 바랬고 목에서부터 흘러나온 푸른 액체가 희었을 옷을 푸르게 만들었다. 피부가 찢긴 자리 아래에는 붉고 푸른색의 선이 이리저리 꼬여 있거나 투명한 관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기괴한 몰골이라 볼 수 없었지만 멀쩡한 상태라고도 할 수 없었다. 어깨나 허리, 허벅지, 발목 따위에서 무식한 쓰레기 더미에 치여 박살 난 흔적이 있었다. 왜 이 사람은 여기까지 흘러들어왔을까. 망가지지 않고, 또 망가지면서.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며 고민하던 소년은 산이 무너져 쏟아지지 않게 작은 몸을 이끌고 올랐다. 하나하나 작은 것은 밑으로 던지고 큰 건 당기고 끌어 밀어내 떨구면서.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기에 하단부에 깔려 찾아낼 수 있었던 그걸 꺼내기까지 꼬박 열흘이 걸렸다. 검댕이 묻은 얼굴을 닦으면 땀과 뒤섞여 번진다. 누군가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질색하는 냄새도 강렬하게 코끝을 후벼 중독성 있고 좋았다. 오랜 시간을 쏟은 게 괴롭지만은 않았단 뜻이다. 그러고도 하루 더. 삐걱거리며 말썽을 일으키는 다리를 고치느라 잔해에서 꺼내 눕히기까지의 시간이다. 갖은 고생을 해서 꺼낸 그건 여전히 잠자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고 깊이 잠들어 깨지 않으려는, 모종의 안식으로 보였으나 소년이 이해할 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크네, 정도의 감상이었단 뜻이다.
꺼낸 이후에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맞는 부품이나 대체할 것을 찾아 온갖 산을 등산해야 했다. 전선의 접합부를 확인하고 제대로 구동하는지 확인도 해야 했다. 잘못 연결한 덕에 오른쪽 다리가 움직여야 하는데 왼쪽 팔이 움직였을 때는 지레 놀랐다가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방금 그걸 네가 봤어야 한다며 아직 듣지도 못할 대상에게 말을 건네면서. 그즈음에는 일상이었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 죽을 둥 잠이나 자는 것에 말을 붙이는 일. 트럭이 서너 번 더 온 뒤에야 긴 혼잣말을 마칠 때가 왔다. 새삼스럽게 손에 땀이 맺힌다. 외관이나 동력 기관은 움직이긴 하니 어설픈 손길로나마 고쳤다고 볼 수 있지만 메모리나 하드는 잘 몰랐다. 아예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안전장치가 망가진 거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으나 소년은 생고생이 되면 어쩌나 모든 게 수포가 될지 걱정하는 일밖에 없었다.
작은 소음이 들린다.
기계가 가진 음을 없앨 수 있는 기술력이 확보된 지는 오래다. 안전을 위해 전기차에 엔진 소리를 넣은 것과 비슷한 사유였다. 인기척을 내고 사람과 어울리며 보조하는 것. 소년은 초조하게 손을 꼼지락거렸다. 적합한 피부 조각을 찾아내지 못해 이곳저곳 천을 둘러 가려둔 것 중 목에 시선이 닿는다. 이렇게 해놓으니 오랜 기간 볕에 노출되어도 타지 않은 희멀건 피부와 결합해 꼭 환자 같았다.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근래 일이 많아 긁힌 다리가 보인다. 태어날 적부터 가진 게 아니라 나중에야 제 것이 된 다리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메모리 손상이 감지됩니다. 사용자 데이터베이스 소실, 저장된 기본 설정 및 구동 프로세스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자가 점검 결과 외부로부터 물리적 충격이 몇 차례 있었던 걸로 추정됩니다. 가까운 서비스 센터에 방문하여 점검 및 수리를 권장합니다.”
내용 자체는 보고에 가까운 딱딱한 형식이었다. 그걸 감쇄하듯 온화한 목소리가 조언과 권유로 탈바꿈시킨다. 수렁에 잠겨 들던 눈이 시선을 올리면 기대어 앉은 이와 눈이 맞는다. 기쁨을 닮은 색이다. 혈관에 피가 돌아 뺨을 붉게 물들이는 색. 부드러운 빛깔 아래 자리한 눈은 고운 색깔을 가졌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내심 아쉬워했을 거면서도 막상 움직이니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만들어낸 이 결과에 흥분해서 소년의 뺨이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난 제스터야!”
“네. 전 가정용 휴머노이드 ZETA-T101입니다. 각 사용자에 맞춰 업무는 달라지나 T사의 기본 지침 하에 주된 업무는 가사 일과 기본적인 교육을 담당합니다.”
“이름이 ZETA... 아무튼 그거야? 다른 거 없어?”
“손상된 메모리로 파악할 수 없으나 사용자가 직접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당사는 친근감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아 기본적인 이름인 ZETA 외에 지어주는 것이 가능합니다.”
“ZETA는 기계의 으음... 버전? 아무튼 이름이 아니잖아. 난 지어줄래.”
이내 소년의 골머리 앓는 소리만 울린다. 당당하게 그게 이름이 아니라 선포하고 지어주겠노라 호언장담했으나 재주는 없었다. 평소의 감각을 살려 지어주자니 본인도 내심 찔리는 게 있는지라 아무것도 모르는 휴머노이드는 미소를 띤 채 기다릴 뿐이다. 이름이 지어진 건 그로부터 오랜 나날이 지나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