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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볼 수 없는 푸른 하늘이다. 불법으로 돌아가는 공장이나 구식 기계의 사용으로 이미 폐허가 된 자연이 어우러져 누렇게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가 잦다.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개다래 끄트머리를 질겅이며 꼰 다리를 흔들거린다. 구름이 없어 평소보다 볕이 세다는 게 쉽게 눈을 뜰 수 없게 했지만 이 정도면 꽤 천상이라는 후한 평을 내렸다. 꼬불꼬불한 글씨를 줄곧 써 내려가거나 수를 셈하고 계산하는 건 지겨운 일이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일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건 누구나 반길 일이다. 아,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눈 뜨기 참 좋게 그림자를 드리운 인물이 그 주인공이다. 한쪽으로 모아 묶은 머리카락의 끝이 뺨을 간질인다. 다정한 미소를 한 아름 얼굴에 내보인 사람이 손을 내민다. 텄네, 텄어. 도망가긴 글렀다는 걸 깨닫고 한숨을 푹푹 내쉰다. 이내 맞잡은 손에 의지해 몸을 일으킨다.

 

“제스터. 오늘 일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내 눈을 피해 숨어서 낮잠을 즐기는 게 급한 일은 아니었을 텐데.”

“아~ 그 급한 일이 갑자기 취소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달까. 그렇다고 취소한 일정을 내 마음대로 다시 잡자니 선생님께도 죄송스러운 일이잖아, 그치?”

“전에도 같은 변명을 썼으면 이번에는 달라져야 하는데 노력도 하지 않는구나.”

 

훤히 보이는 일이다. 내내 미소 짓던 이가 골이 아프단 얼굴로 변하고 다 들킨 것에 배시시 웃고나 있는 건 한두 차례 있었던 게 아니다. 자리에 죽치고 앉아 있거나 관심 없는 이론적 공부에는 도통 집중을 못 하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도망 다니는 건 일상이었다. 그래봤자 오가는 장소는 또 한정적이라 선생님이라 불린 사람에게 발각되는 것도 일상이었고.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곧 웃는다. 일상으로 자리 잡기까지 투정과 어리광을 받아준 탓임을 모르지 않아서다. 학업용으로 설치한 천막으로 향하는 제스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의아한 시선에 선생님은 수업을 위해 며칠 외박 좀 하자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다.

 

근처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이의 몸으로 오갈 수 있는 곳이란 한계가 있다. 아무리 가족과 유대감이 깊지 않아도 보호자의 그늘에 있을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호기심이 많고, 충족하려 움직이는 듯 보여도 한 끗 차이로 멈추어 선다. 가장 큰 일탈이 고철 산이니 말이다. 소년 덕에 손상된 메모리를 가졌음에도 다시 한번 자신이 가진 효용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된 휴머노이드는 안타깝다는 감정을 품었다. 충족되지 못한 갈망을 엿볼 수 있는 건 인간이 그렇게 원했기 때문이기에. 그러니 이 외박 수업은 아이를 위함이었다.

 

산이 자리한 구덩이를 벗어나서 몇 그루 없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가 박힌 땅을 한참 걷는다. 매끄럽게 포장된 길목도 아닌 황량한 벌판이라 자갈이 발에 채고 걸린다. 몇 번인가 넘어질 뻔한 제스터에게 선생님은 등을 권유했으나 땀에 절어서도 고개를 붕붕 젓는다. 의지하고 기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그것을 구태여 인식시키기보다 손을 내밀어 잡는다. 그러면 저쪽 멀리 짙푸른 녹음이 보인다. 행성의 멸망설이 돌아도 아직 인류가 숨 쉬고 살아가는 건 푸른 별이 아직 푸르긴 한 탓이다. 보호 지침이 내려져 벌목하거나 손상 할 수 없어 울창하게 자라난 그곳은 빽빽한 탓에 언제고 어둠이 도사렸다. 불법으로 만들어져 사용자를 죽이고 숲에 도망쳐 사는 휴머노이드가 있다는 소문까지, 제스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긴......”

“그 소문을 믿어? 무서우면 돌아가고.”

 

그 나이대 아이란 그렇다. 지독하게 소심하지 않고서야 무섭냐는 말에 되레 발끈해 수락해 버리는 성향이 있다. 제스터 또한 겁쟁이로 보이는 건 질색하는 나이였고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자신이 그런 게 무섭겠냐며 내가 이보다 더 어린 나이에 고친 기계가 몇 개인 줄 아느냐부터 나와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는 허세까지.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자니 뾰로통해진 뺨이 보인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단단히 토라질 게 뻔했다. 소문의 진위성을 확인해 본 건 아니나 별것 없을 거다. 그간 오가며 이 숲에서 나사 하나 발견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곧 숲의 어둠이 두 형체를 삼켰다.

 

숲의 뿌리는 땅을 뚫고 나와 두꺼운 형태를 자랑했다. 이리저리 얽히고 어두운 탓에 어둠 속에서도 쉽게 사물을 분간하는 선생과는 다르게 제스터는 주춤거렸다. 넘어질까 두려운 탓이다. 그러자 곧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안아 든다. 혼자 갈 수 있다는 중얼거림에 안고 가고 싶어서, 그렇게 일축한다.

 

어둠이 점점 옅어진다. 밀집되어 있던 나무가 줄어든 장소가 보인다. 빛이 내리쬐어 짐짓 신성해 보이는 반짝임이다. 관리되지 않아 길게 자란 풀을 헤치고 나아간다. 은빛이 가까워진다. 수면에 반사된 빛이 너울진다. 제스터의 뺨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빛이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선생은 아이를 바라본다. 파란 눈이 선명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보호자의 허락도 없이 아이를 멀리까지 데려갈 수도 없었고 내륙에서 바닷가까지 가기란 쉽지 않았다. 방문이 허락된 바다를 찾는 것도 까다로웠고 허가가 내려오는 것 또한 그랬다. 그래도 언젠가 작은 호수가 아니라 더 큰 바다를, 눈을 닮은 파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얕아서 들어가도 돼. 갈아입을 옷도 구해놨으니까.”

“플록스도 들어가자!”

“뭐?”

 

감상에 젖을 시간이 얼마나 있던가. 풀을 미리 베어 마련해 둔 자리의 짐을 정리하러 제스터를 내려두곤 안전을 당부하던 차다. 딱 한발, 걸음을 옮기려던 몸이 앞으로 당겨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간 미간을 찌푸리거나 곤혹스럽게 입술 끝을 내리거나 미소를 짓거나 정도의 적은 표정에 하나 추가된다. 물살을 가르고 첨벙이는 소리가 몇 번 울린다. 체중을 실어 당겨 뒤로 넘어가는 제스터가 다칠까 급히 당기다가 걸음이 꼬인다. 그러니 그간의 소리보다 큰 게 하나 울렸다. 주저앉은 채로 웃음을 크게 터뜨린 제스터와 얼떨떨하게 놀란 눈으로 그를 보던 플록스는 이내 웃어버린다. 햇볕은 따스했고 얕은 물은 시원해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처럼 듣기 좋은 소성만 가득했다.

 

하늘은 내내 맑았다. 과거와 다르게 밤이 어두워도 별 한 조각 보기 어려웠음에도 오늘만은 수놓은 별을 보기 좋았다. 기름 등을 미약하게 켜놓고 천 위에 누워 올려다본다. 플록스는 별자리나 일화에 대해서도 많이 알았기에 아이가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듯 소담히 목소리가 울린다. 가물거리는 눈을 몇 번이고 애써 뜨려던 제스터가 중얼거린다. 네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내 숨소리가 퍼진다. 플록스는 등 너머로 보이는 앳된 옆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조명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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