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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도 두 해가 넘게 지났다. 그간 제스터는 다리의 길이를 맞추기 위해 자주 정비를 해야 했고 싫다는 수업도 붙들려 꼬박꼬박 들었다. 날이 갈수록 숨는 실력이 늘었지만 그에 맞춰 플록스의 찾는 실력도 일취월장이었다. 플록스도 몇 군데 붕대를 풀 수 있게 되었다. 이 분야에 소질이 있는 제스터와 함께 새로운 산이 생길 때마다 괜찮은 부품과 피부를 커버할 수 있는 물건을 찾은 노력 덕이다. 목 부근의 인공 피부의 면적이 넓어 보이지 않는 부분부터 해결해야 해서 제스터는 불만스러운 눈치였지만 플록스는 충분했다.
플록스는 제스터와 만나지 않을 때면 고철 산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망가진 기계를 찾거나 다른 쓰레기 산을 살피러 나갔다. 그곳은 온갖 것이 버려져 악취가 옷에 배거나 검은 물웅덩이에 구더기가 들끓기도 했으나 필요한 물건을 찾기에 이쪽이 나았다. 그전 어떤 사용자에 의해 사용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괜찮은 수준의 자료를 제공받았던 것 같다. 다양한 분야의 기초 지식은 물론이고 고학력자의 전문 지식보다는 밑에 웃도는 자료가 몇 있었다. 한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충분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지식을 찾아 헤매는 건 제스터가, 이번 아이가 관심을 둔 분야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플록스는 제스터와 있지 않을 때면 홀로 망가진 물품을 수리하곤 했다. 직접 해보는 것만큼 체득하기 쉬운 건 없으니까. 이날도 산책하듯 산을 돌아 필요한 물품을 주워 돌아온 때였다.
트럭이 오갈 때나 제스터가 사고를 칠 때가 아니라면 소음이라는 게 일어날 곳이 없는 조용한 곳이다. 가져온 물건을 찌그러진 컨테이너 안에 넣어두는데 산 서너 개쯤 뒤편에서 큰 소리가 났다. 제스터가 산을 오르다가 헛디뎌 무언가를 떨구기라도 했나, 오기로 한 날이 아니었어도 본인 내킬 때면 방문하곤 했기에 여기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플록스는 물건을 정리하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닐은 동생이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고 고철 산에 오가는 걸 알고 있었다.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후에는 정비나 수리를 직접 하고 싶어 했다. 오죽하면 근처의 정비소란 정비소는 들쑤시며 구경하거나 가르쳐달라 떼쓴걸 온 마을 사람들이 알겠는가. 부모도 몇 번이고 어른 일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혼을 냈지만 별달리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린아이인데다가 다리도 잃어 안쓰러웠던 건지 대부분의 정비사는 소꿉놀이라도 하듯 가르쳐줬다. 생각보다 장래성이 있다는 말도 오간 것 같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정비사는 기껏해야 이 구덩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높은 곳을 향하려면 학문의 길을 잡는 일이다. 구역질 나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땀에 범벅되어 쥐꼬리만 한 돈을 받으며 사는 것보다 최신식의 설비 기계가 마련된 연구소 같은 곳에 취직하는 일 말이다. 동생과 다르게 닐은 머리가 비상한 편이었고 노력도 했다. 마을에서도 맥크레디 집에서 용이 나는 게 아니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으니까. 그 자신도 뿌듯했다. 동생은 나이를 먹으며 형과 비교되는 것에 위축되는 것 같았으나 꾸준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했다. 부모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며 닐에게 모든 기대와 초점을 맞췄고 동생은 그 기대에서 벗어나 겉돌았다. 부모 또한 동생이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지 알고 있으면서 구태여 말리지 않았다. 형의 공부나 방해하지 않으면 되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닐은 동생이 모자라다 여기면서도 부러웠다. 그리고 제 한몫하기 힘들 동생을 책임질 것이 자신뿐이라고 여겼다. 못난 동생이고 자신은 형이니까. 분명 그랬는데.
낙오자의 옅은 우울과 패배감이 서린 낯이 어느 순간부터 밝아졌다. 고철 산에 가는 날이 늘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항상 집에 들어오라던 부모의 말을 생각보다 잘 지켰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보며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모는 몇 번 꾸중했으나 큰 걱정은 담겨 있지 않았다. 걱정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걸 눈치채더니 어느 날엔 며칠이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부모는 모르는 듯했다. 친구 집에나 있는 모양이지 정도로 여겼다. 마을에 또래 친구가 없다는 건 자신도 알고 부모도 알았다. 긴 외박 뒤에 돌아온 동생의 얼굴엔 구름 한 점 존재하지 않았다. 그간 앓았던 걸 떨치고 일어선 사람의 모습이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서는 안 됐다. 무얼 하고 온 거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질문해온 게 낯선지 잠시 놀란 토끼 눈을 하더니마는 금세 웃으며 비밀이라고 답했다. 맥이 빠졌으나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왜 화가 나는지 알 수 없어서 자리를 피했다. 오늘도 공부하러 가? 뒤에서 말을 건네는 말에 또 한 차례 부아가 치민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너와는 다른데. 달라야 했다.
그러고도 반 해가 지나서야 결심이 섰다.
시험에 합격해 상위 학급으로 진학할 수 있게 됐다. 마을을 떠나야 해서 부모는 걱정이 많은 듯하지만 언제나처럼 잘 해낼 것이라 여겼다. 동생도 축하한다는 말을 남겼다. 저녁에는 가족끼리 오랜만에 다 같이 식사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 잠시 머뭇거리던 동생은 선선하게 좋다는 반응이었다. 오늘은 그곳에 가지 않을 모양이다. 내심 그 사실에 안도했다. 부모가 일을 나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외출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동생이 나갔다. 가지 않는 게 아니었나? 그 순간 용기가 들었다. 무엇을 숨겼는지 알아내야 한다는, 동생이 잘못된 길에 빠졌다면 거기서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치졸한 책임감이 들었다. 뒤 한번 보지 않고 익숙하게 고철 산으로 걸었다. 덕분에 미행은 쉬웠다. 아무도 자신의 뒤쫓을 거라 여기지 않은 탓이겠지. 그게 또 한 번 마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초입에 들어서서도 가야 할 곳이 어딘지 정확하게 안다는 듯 거침없었다. 이리저리 튀어나온 위험한 게 많은데도 겁도 없었다. 그러고는 산을 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 다리로도 잘도 올랐다. 디프테리아 백신을 투여했지만 다치는 게 좋은 사람은 없다. 초조하게 올라가는 걸 바라보다 따라 올랐다. 이런 위험한 일도 오늘 이후로는 못 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확실한 실체를 알아야 했다. 단지 그뿐이다. 산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았다. 잘못 디디면 문제가 생길 테지만 하나하나가 커서 그런지 중턱이라 부를 만한 곳도 있었다. 정상도 뾰족한 끄트머리가 아니었다. 다 오르니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하는 동생의 등이 보였다. 숨을 몰아쉬자 그제야 벌떡 일어나 돌아본다. 당황한 낯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를 목도한 사람의 얼굴. 내심 승리감과 함께 불쾌함이 치솟는다.
“어... 형이 왜 여기 있어? 설마 내 뒤를 쫓아온 거야? 왜?”
“오늘 가족과 저녁 약속이 있는데도 넌 여기에 왔네. 그간 네가 이곳에 질릴 정도로 가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 다리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해? 네가 제정신이야?”
“...... ...그런 말 하려고 온 거면 가. 형이 말했다시피 여긴 어릴 때부터 내가 온 곳이니까. 다칠 일도 없어.”
“너도 같이 가.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말고, 이런 곳에 올라올 생각도 하지 마. 정비사 일이 좋은 거면 마을에서 배우면 되는데 왜 여기서 이러는 건데? 마을 정비사들이 널 예뻐라 하는 건 지나가는 개도 다 알 텐데 사춘기야? 너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으면 이런 짓은 그만둬야지.”
“......”
“여기서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다리도 안 좋은데 부모님은 너 이러는 거 알아? 알면 못 나가게 했겠지. 사고란 게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니란 건 네가 더 잘 알잖아. 하아...... 약속해. 다시는 안 올 거라고. 내가 여길 떠난다고 말로만 하지 말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해. 그리고 돌아가자.”
“...ㅇ....”
“뭐?”
“...왜, 형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형이 나한테 뭘 해준 게 있는데 이제 와서 걱정한다는 식으로 말하냐고. 내가 형한테 뭐 해달라고 한 적 있어? 없잖아. 내 다리는 내가 알아서 해. 다쳐도 내가 다친다고.”
망치로 머리를 맞아본 적은 없지만 누가 세게 뒤통수를 갈긴 것 같았다. 머리뼈 아래에 있는 뇌가 딩- 하고 울리는 감각. 이윽고 척추를 타고 내려가 싸하게 퍼져나가는 아찔함. 찾아오는 뜨거운 기운. 싫은 내색 없이 꾸중이며 타박을 전부 들었던 동생이 내내 피하던 시선을 들어 노려본다. 평생 주눅 들어 살 줄 알았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 당당히 고개를 든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언제 이렇게. 그 말에 지레 찔려서 언성이 높아진다. 부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다.
“형한테 그게 대체 무슨 말버릇이야?! 네 다리를 네가 알아서 한다고? 그게 널 걱정하는 가족 앞에서, 형 앞에서 할 소리야? 네가 다리를 다쳤던 일에 부모님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서 그래? 그런 애가 이딴 곳을 들락거리다가 머리라도 깨져 오면? 주검이라도 되어 오면 다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러냐고! 네 말대로 나는 형이야. 네가 어떻게 되든 평생 널 책임져야 한다고!”
“내가 여길 오가는 건 부모님도, 형도 알잖아. 만류한 적이 있긴 했어? 다리도 이런데 그런 입 하나 줄어들면 반기는 건 아니고? 내가 며칠이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여길 와서 찾아줄 관심은 있어? 형한테 책임져 달라고 한 적 없어. 이제 와서 형 노릇 하려고 하지 마. 부모님이 좋아하는 아들 역할이나 해. 동생한테 관심 쏟다가 형 앞길에 구정물이라도 튈까 걱정하는 부모님이 형이 이러는 거 알면 안 좋아할걸.”
숨이 턱 막힌다. 비난이 쏟아지는데 그런 동생의 얼굴이 지쳐있어서, 갈구할 수 없는 것에 쉬이 체념하고 받아들인 지 오래라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은 몰라도 부모가 찾으러 갔을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심하게 다쳐 혼자 움직일 수 없다고 해도 그 상태로 방치된 채 죽어서야 찾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든다. 부모가 동생보다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 또한 안다. 어쩌면 이런 생활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구명줄일 테니까.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던가. 그러니까 노력하고, 노력하고......
“음, 말씀 도중 실례합니다. 감정이 격해진 듯한데 이곳은 위험하니 내려가서 대화하는 게 어떨까요.”
다감한 목소리가 정중하게 요청한다. 우리 사이에 중재하려 끼어든 존재는 어른의 형체다. 긴 머리를 앞으로 내놓은 단정한 인상의 남자는 곤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동생과 나의 눈치를 살피며 혹시라도 몸싸움이 일어나는 게 아닐지, 다치는 일이 있을까 염려하는 기색이다. 특히 동생의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동생이 이름을 부른다. 울컥한 목소리와 얼굴에서 그 순간 깨닫는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유도, 잘 웃게 된 것도, 집을 며칠이고 비우는 것도. 전부 저 사람이 이유구나. 목의 붕대가 보인다. 끝이 풀어진 붕대 아래로 갈라진 피부가 보인다. 붉은 속살이 아닌 얼기설기 얽힌 선 타래가 보인다.
“휴머노이드 따위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플록스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가족보다 저깟 기계가 더 중요하단 거야? 제스터, 정신 차려.”
“...플록스는, .......”
내 가족이야. 웅얼거리듯 뱉은 말을 저 기계도, 닐도 들었다. 동생을 만류하려던 기계의 손이 허공에서 머뭇거리다 닿는다. 가벼운 토닥임에 감정이 북받치는지 동생이 고개를 푹 숙인다. 피가 섞인 가족을 앞에 두고 너는 가족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젠 파란 피를 가진 고철 덩어리한테, 인간에게 봉사하는 사명을 가진 것에 가족이라 말한다고. 순간 눈앞이 희게 변했다가 다시 시야가 돌아온 건 동생의 비명과 손에 남은 묵직한 것을 밀어낸 느낌, 아래에서 들리는 육중한 소음이었다. 몇 번인가 기침을 토해내는 기계의 입가에 피가 묻어난다. 가슴께를 뚫고 지나간 날카로운 철근이 보이고 옷을 물들이며 퍼져나간다. 작은 몸이 하늘을 난다. 이내 건물의 벽에 부딪히고 퉁겨져 나와 바닥을 구른다. 다리가 기괴하게 꺾였다. 힘센 거인의 손이 양쪽으로 잡아 비튼 것처럼, 사람의 피부가 저렇게 찢어질 수 있나. 하얀 것이 툭 튀어나왔다. 하얗게 질린 입술 사이로 몸이 경련할 때마다 피를 토해낸다. 아, 아, 아.
붙들고 우는 동생을 두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저녁 식사는 동생을 제외하고 남은 가족끼리 먹었다. 동생에 대해 타박하는 말이 잠깐 지나가고 어디 아픈 게 아니냐는 걱정을 잔뜩 듣고 나는 마을을 떠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