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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록스가 요즘 이상하다. 눈물을 쏙 빼놓고 한동안 수리에만 매달리게 만들어 다시 눈을 뜨게 해놓은 뒤로 쭉 그랬다. 생각에 골몰할 때가 잦았고 불러도 듣지 못할 때가 많아졌다. 가기로 한 날 가지 않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비를 하자고 이야기해도 피하는 시도가 늘었다. 서서히 불만이 쌓이면서도 불안이 밀고 올라온다. 그때 했던 말이나 닐이 한 행동이나. 그래도. 지키려 한 몸짓이 불러온 사태였다. 부담스러운 말이 아니었을 거라 믿고 싶었다. 결국 목 끝까지 불안이 잠식했을 때 억지를 써서 정비를 핑계로 플록스를 앉혔다. 셔츠를 풀고 앉은 얼굴은 평소와 같은 미소지만 어색한 눈치다.
“......안 물어봐?”
“오늘 정비는 네가 해야 한다고 우겨서 하는 건데. 물어볼 게 뭐가 있어.”
“......”
“......물어볼 게 있어?”
“응.”
“물어봐.”
“무서워서 못 물어보겠어.”
“제스터.”
“...응......”
“어떤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했던 말은 부담스럽지 않았어. 오히려 기뻤고...... 안쓰러웠다고 해야겠지. 그리고...”
“그리고?”
“무서웠어.”
의미 없이 정비하는 체하던 손짓이 멈춘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지 못하겠는지 제스터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플록스의 말이 이어진다. 메모리의 손상이 아니었어. 록이 걸려있었지. 그때의 일로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켜서 록이 풀렸어. 그뿐이야. 고개를 들면 분홍색 눈이 보인다. 책망 한 점 없는 사과를 담은 다정한 눈이다.
“너를 만나기 전 메모리를 열람할 수 있게 된 것뿐이지. 그래서 그 말이 기쁘고 무서웠어. 한번 들었던 말이거든. 아니, 여러 번 들었던 말이지. 전 사용자가 휴머노이드를 소모품으로 여겨 사용하는 유형에 속한 것도 아니고. 도리어 좋은 사용자였어. 가족처럼 여기고 구성원으로 받아들여 줬으니 드문 사례지.”
“근데 두려웠다며......”
“인간의 생은 짧아. 기계의 생도 소모성이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짧아지지. 한 아이의 생애를 보고서도, 탄생과 죽음을 보고서도. 길게 이어진 기계의 삶도 언젠가는 끝이 있었을 뿐이야. 그 과정에서 기쁨도, 슬픔도 전부 누려봤지만. 정이라는 건 인간 사이에서도 그렇듯 서로 같은 크기일 수는 없어서.”
플록스가 말을 줄인다. 말이 길어지면 제스터의 상처를 건드릴까 염려되어서다. 정을 준 상대에게 거부 받는 건 사고할 수 있는 모든 존재에게 아픔을 준다. 사랑이 그렇다. 애정의 크기만큼 고통을 동반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알면서도 다시 그 길을 걷는 게 맞는지 오랜 삶을 살아온 기계는 경험을 반추하며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은 그 두려움마저 끌어안고 살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전보다 젖살이 많이 빠진 제스터의 뺨을 어루만진다. 무어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이는 걸 보며 웃었다. 이끌린다는 것 또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피할 수도 없더라. 그 전 경험이 호된 일이었다고 해도 분명, 그랬을걸. 네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전에 놀러 갔을 때. 호수에 갔을 때 자기 전에도 네가 그런 말을 했어.”
“......내가?”
“네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
제스터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귀가 뻘겋게, 목부터 얼굴이 다 시뻘겋다. 플록스가 처음으로 소리 내 웃는다.
“부모한테 반말하는 아들은 좀 그렇지. 그렇다고 우리가 쌍둥이가 될 수는 없고. 그럼, 역시.”
“형, 이 되어..줘...”
“말썽꾸러기 동생을 둔 형이 되는 수밖에 없네.”
“나, 나 갈래. 바쁜 일이 생각났어. 저, 정비는 다 끝냈으니까!”
급히 몸을 일으킨다. 생각하고만 있던 것을, 은연중에 당연시하고 있던 걸 입 밖으로 꺼내어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건 부끄럽고 놀라워서. 자리를 뜨는 등에 대고 플록스가 말한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봐, 제스터.”
“...혀, 혀, 형도 잘 자고...! 내일 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