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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착륙

—EMERGENCY, EMERGENCY. 탑승자 여러분께서는 속히 구명정으로 대피하여 주십시오. 다시 한번 반복해서 알립니다. 탑승자 여러분께서는….

 

하늘에서 빛이 번쩍인다. 정확히는, 하늘에서 숲 중앙으로 떨어진 무언가가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기이할 만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다. 평소의 청년이었다면 그 역시 외면한 채 제 갈 길을 갔을 테나… 주변에서 보내는 무관심과 약간의 호기심이 청년의 발을 움직였다. 후에 회상하기를, 그건 운명과 맞닿아 있었다고….​

청년— 녹스 스카테이아의 발에 밟힌 낙엽들이 바스락거린다.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이 숲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작은 다람쥐가 녹스의 손에 도토리를 하나 떨어뜨렸다. 그는 도토리를 다람쥐에게 돌려주고서 걸음을 재촉한다. 숲 밖에서 봤을 때도 밝은 빛을 내던 그것은 그가 다가갈수록 빛을 사그라뜨리고 있었다. 지척에 다가섰을 무렵엔 반딧불이의 불빛만큼 흐려져서 종내에는 완전히 꺼지고 말았다. 그것의 힘이 다했던 건지, 우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그것이 어쩐지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는 감상을 받았다.

그는 빛이 줄어든 이후에야 그 물체를 자세히 살필 수 있었는데, 그보다 두 배는 큰 그 물체는 동그란 구 형태를 하고 있었다. 구성 물질은… 아마도 금속. 정확히는 고철. 그것의 용도는 모르겠으나 여기저기 그을리고 파손되어 제구실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 물체를 한 바퀴 돌아 살펴 제자리로 돌아온 녹스는 고개를 기울였다가 돌아섰다. 이런 비확인 비행 물체와 엮여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애초에 이곳까지 온 이유도 좀체 알 수 없다. 그는 평소에 UFO나, 미스터리, 음모론 이런 것에 하등 관심이 없었으니까. 숲 산책을 했다 칠까, 그런 마음으로 그 장소를 떠나려 할 때쯤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키이잉,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기계가 움직인다. 사람 하나가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구멍이다. 저 기계에 생명체가 들어갈 수 있다면 아마도 문의 역할을 할 테다. 그는 한발 물러섰다. 골치 아픈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데.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나오는 것은 웬 여자다. 헬멧을 쓰고(저것을 그저 헬멧이라 지칭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우주복 같은 슈트를 입은 여자.

여자는 고철 덩어리 밖으로 한 발 내딛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시선이 녹스를 스쳐 이내 휙. 망가진 고철 덩어리를 몇 번 두들기고는 낙담한 낯을 한다. 그 과정에서 기체가 더 파손되었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테다. 기체가 제 쓸모를 하지 못할 것이란 것을 깨달은 여자가 고개를 돌려 다시 녹스를 바라본다. 입을 뻐끔거리던 여자는 헬멧의 존재를 깨달았는지 손목에 찬 밴드를 확인하고 슈트에 달린 무언가의 버튼을 꾹 눌렀다. 헬멧이 사라진 것은 그와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음, 굉장히 SF 같은 일이라 생각하며 녹스가 고개를 기울인다. 약간의 정적. 여자가 입을 열었다.

“안녕, 지구인. 음, 이 언어가 맞는지 모르겠는데…. 인공지능이 추천해 주는 언어로 통역을 돌리고 있거든. 혹시 내 말 알아듣겠어?”

첫 마디부터 외계인 같은 말이다. 근처에서 영화 촬영이라도 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이라곤 월동 준비를 하는 숲의 동물들뿐이다. 카메라는 고사하고 전선 하나 보이지 않는다. 녹스가 대답하지 않자,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녹스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눈처럼 새하얀 여자였다. 여자의 어깨를 흘러 타고 내리는 흰 머리카락이 겨울 낮 반짝이는 눈처럼 희고 곱다. 차림새에 신경 쓰느라 여자의 외모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런 머리카락보다 더 흰 것이 여자의 눈이다. 약간의 차이로 흰자와 구분되고 있는 여자의 홍채가 맑게 빛났다. 그것이 징그럽다는 생각보다는 막 깎아내린 보석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것은 지구의 인간과 다를 바 없는데, 오히려… 지구의 인간들보다 조금 더 곱다.

“이거 난처하네. 지구는 언어가 지나치게 많아서… 너, 이 구역 사람이 아닌 거야?”

“아, 미안해요. 알아듣고 있어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그런 거면 좀 빨리 말해! 다른 언어를 고르고 있었단 말이야. 참 나, 이렇게 느긋한 지구인을 봤나.”

“글쎄요…. …그런데, 지구인이라면… 당신은 지구인이 아니기라도 한 건가요?”

“……. …아, 아니이? 나도 지구인이지. 응, 지구인이지.”

이 여자, 거짓말을 정말로 못한다. 녹스의 물음에 제 실수를 뒤늦게 깨달은 여자가 몸을 뒤로 젖히며 과할 정도로 반응했다. 두 손을 흔드는데 딱 봐도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녹스는 눈으로 여자를 살피며 둥근 낯을 했다.

 

“으음… 그런가요. 그렇다고 칠게요.”

“그렇다 치는 게 아니라 나도 지, 진짜 지구인이야!!”

“네에, 그래서… 이곳엔 어떻게 온 건가요.”

“으응? 지구를 지나다가… 본선에 이상이 생겨서 긴급 탈출을 … …어, 아니, 아니, 길 잃었어.”

사유 한 번 SF적이다. 그러니 예컨대 지구에 올 생각은 없었는데 불시착했다 이 말인가. 보아하니 여자가 나온 저 구체의 기계가 정말 UFO였던 모양이다. …다시 쓰기는 힘들어 보이지만.

“길을 잃었으면, 다시 돌아갈 방법은 있나요?”

“으응…. 글쎄. 집에 연락만 할 수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문제는 통신 장비고 뭐고 죄다 망가져서…. 고치려면 좀 걸릴 것 같아.”

“저런.”

“저기, 그래서 말인데…, 지구인아.”

“제 이름은 지구인이 아니에요.”

“알아. 사람 이름이 어떻게 지구인이야?”

“…….”

“앗, 아니지. 그래, 네 이름이 뭔데?”

“…으음, 글쎄요. 제 이름이 무엇일 것 같은가요? 비슷하게나마 맞추면 알려줄게요.”

“…아잇! 그러는 게 어딨어? 난 지구인의 작명 방식 같은 건 전혀!! 모른다구. 내가 널 계속 지구인이라고 부를 순 없잖아.”

 

조금 놀리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리 단박에 반응을 해오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구태여 티를 내진 않고, 잠시 고민하듯 입가를 톡톡 건드리다가, 안달이 나겠다 생각이 들 때쯤 느릿느릿 말을 내뱉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쳐다보는 외계인의 눈빛이 점점 간절해진다.

“……녹스예요. 녹스 스카테이아.”

“녹스? 녹스…. 응, 좋은 이름이네, 녹스 스카테이아.”

 

입안에서 몇 번 발음하듯 웅얼거린다. 통역기를 사용하고 있다던 저 외계인의 귀에 어찌 들리는지는 몰라도 이름을 입에 담으며 발음하는 이의 얼굴이 밝다. 처음 만난 지구인의 이름이 마음에 든 기색이다.

 

“그러는 당신은요? 당신 이름은 뭔가요.”

“으응…. 글쎄. 잠시만, 이쪽 발음으로 하면….”

눈을 굴리던 외계인이 말한다.

 

“내 이름은 아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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